▲ 김현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기획단장

1948년 당시 심뇌혈관질환은 미국 국민 사망원인 1위 질환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국립심장연구원(National Heart Institute로 오늘날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산하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의 전신)은 심뇌혈관질환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이는 프래밍햄 심장 연구(Framingham Heart Study)로 불리는 코호트 연구로 오늘날까지 68년간 지속된 기념비적인 연구의 시작이었다.

미국 프래밍햄 마을에 거주하는 30세부터 62세까지의 주민 남녀 5000여명을 모집한 후 3세대에 걸쳐 매 2년마다 건강검진, 생활습관, 의료기록 등을 통해 심뇌혈관질환과의 위험인자를 발견하려는 연구였다. 이 코호트로부터 생산되는 자료로 인해 유수 과학저널에만 1200편의 연구논문이 발표되었고, 담배·고혈압·콜레스테롤·비만·당뇨·운동부족이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1970년대부터 적극적인 예방정책을 펼친 결과 1950년에는 10만명당 심장질환 사망자수가 307.4명이였으나 2015년에는 절반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015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이 정밀의료 이니셔티브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정밀의료 이니셔티브의 핵심이 되는 정밀의료 코호트의 모티브가 바로 프래밍햄 심장 연구다. 프래밍햄 심장연구 참여자 수의 200배가 넘는 100만명의 일반인 자원자를 통해 건강정보(유전체, 의료정보, 라이프로그) 등을 수집함으로써 다양한 질환의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정밀의료, 국가전략 프로젝트 추진=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밀의료를 추진하고 10만명 이상의 일반인 자원자가 참여하는 정밀의료 코호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의 정밀의료 코호트는 기존 코호트 연구와 참여자수, 수집 자원의 폭과 깊이 등의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해 “Ultimate Big data project”라고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모바일, IOT, 클라우드, 인공지능, 슈퍼컴퓨팅, NGS 등 최첨단기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학, 병원, 기업, 공공기간 등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체가 서로 협력하고 정밀의료 자원을 연계할 수 있는 구심점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구심점의 핵심은 정밀의료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우리 국민들이다.

미국에서는 정밀의료 연구 자원자들을 시민과학자로 부르면서 함께 연구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정밀의료연구 자원자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미래 후손들의 의료를 위해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하여 정보를 공유해야만 연구가 지속될 수 있다. 국민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만큼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철저한 보안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정밀의료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정밀의료 암 임상시험도 함께 추진한다. 우리나라는 주요국 중 표적항암제 접근성이 가장 낮아 미국 대비 22%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부작용 없이 치료가 가능한 표적항암제가 상당수 개발되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지 않아 쓸 수도 없고 어떤 사람들에게 적합한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는 국가 단위의 대규모 유전자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통한 임상시험을 시작하여 암환자에게 맞춤 치료법을 찾는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우리나라도 3~4기 암환자들에게 새로운 맞춤 진단법 및 치료법을 찾아 그분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연구를 시작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연구의 성패도 암환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원을 공유하느냐에 달려있다.

미국에서 암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주도한 전이성 유방암 연구 MBC(Metastatic Breast Cancer)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이다.

2500여명의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 주도적으로 환자 후원자, 암연구자, 의사, 임상전문가 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 연구를 설계하고 진행하고 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 네트워크 회장인 쉴리 메르츠는 “생체조직, 의료기록을 공유함으로써 환자가 연구자를 도와 전이성 질환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능동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정밀의료발전 원동력= 이와 더불어 정밀의료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지속가능한 미래의료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동인이다. 정밀의료는 개인별 맞춤예방으로 질환 발생률을 낮추고 조기진단 및 맞춤치료로 고령화와 만성질환으로 급증하는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밀의료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고,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되고, 의료현장에 확산되고, 종국에는 의료시스템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에서 비롯된다.

프래밍햄 심장연구 참여자였던 밸러리 프린은 “프래밍햄 심장연구는 항상 제 삶의 일부였어요. 이 연구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녀의 딸인 모건 프린은 “할머니는 제가 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라며 연구 참여 자원소감을 담담히 밝혔다. 할머니도 프래밍햄 심장연구 참여자였으며 72세 나이로 사망했을 때 그녀의 유언에 따라 연구를 위해 뇌를 기증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미래 의료를 바꾸는 진정한 국민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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