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약분쟁’, 정확히는 ‘한약조제권분쟁’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때였다. ‘한약분쟁’은 보건의료시스템, 그 중에서도 공급시스템의 질서를 잡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약사들의 한약조제 허용 여부로 인해 촉발된 한의학계와 약학계 그리고 이를 중재하던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써 1993년부터 시작돼 1997년이 되어서야 일단락된 사건이다. 그 때 보건복지부장관에는 제33대 손학규 전(前) 장관(이하 ‘S’ 전 장관)이 역임하고 있었다. ‘한약분쟁’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의료법에는 한의사의 업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한방(韓方)의 영역과 자격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 갈등의 씨앗이었다. 1974년 대한한의사협회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 약국의 한약 임의조제를 단속해 달라며, 국회에 약사법 개정안을 청원했다.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1980년 3월 약사법 시행규칙에 “약사는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고 청결히 관리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신설된다. 애매했다. 한의사들은 이 조항을 약사의 한약조제를 금지한 것으로 이해했고, 약사들은 ‘한약장’을 재래식 한약장으로 해석하고는 현대화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보건사회부가 약사들의 한약 조제를 단속하려 하자 약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문제를 덮었고, 약사들은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한약을 조제·판매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시대를 맞아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보건의료시스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료보험(현 건강보험) 확대, ‘의약분업’ 등의 시책이 추진됐고, 한약조제권 역시 교통정리가 필요하게 됐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대전제 하에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오랜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원죄’까지 있었다. 갈등은 초기에 해결해야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법이다. 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애매한 법규정과 자의적인 해석 및 집행으로 얼버무리고 봉합했던 것이, 훗날 갈등이 폭발할 소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993년 1월 안필준 보건사회부장관(제26대) 시절, “약사는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고 청결히 관리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삭제하는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공고가 나왔다. 한의사들은 이를 약사의 한약조제를 허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어서 ‘의약분업’과 한약사제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 시안이 공표 됐다. 뇌관을 건드린 셈이었다.

불똥은 사방으로 튀었다. 한의사들은 물론, 한의대생들까지 데모에 나섰고, 사상초유의 한의대생 집단 유급 사태까지 벌어졌다. 약사들은 한약사제도가 기존 약사들의 한약 조제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폐업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경실련이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반발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이 때 김원종 전 국장(K 전 국장)은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1997년 귀국해서 약무정책과에 발령을 받았다. K 전 국장은 “오늘만 보지 말고 내일을 보자.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이다.” 약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약대를 6년제로 개편하는 방안도 있다며 약계 쪽을 접촉하고 설득했다. 1997년 말 ‘S’ 전 복지부장관 시절 헌법재판소가 개정 약사법에 합헌 판정을 내림으로써 3년이 넘도록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한약분쟁’은 겨우 수습이 되었다. K 전 국장은 ‘한약분쟁’ 현장에 투입돼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고 술회한다. 모든 이익집단에게는 자신들만의 역사가 있다. 특히, 전문가집단은 사용하는 용어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다. 생소하기도 할뿐만 아니라, 각각의 용어에는 고유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이를 우습게보고 섣불리 건드리면 사회적으로 불신과 대립이 증폭될 위험마저 있다.

이처럼 한약분쟁은 정치적으로 타결됐다. 우선 한약학과는 한의대가 아닌 약대에 설치하되 한의대가 있는 종합대학에 설치가 됐다. 한의사들의 군의관, 공보의에 입대할 수 있게 됐고, 행정부 내 독립적인 전담부서(한방정책관실)가 설치됐다. 한의학연구원 설치, 국내 한의과대학 설치 검토를 약속했다. 원래 서울대 내 한의대 설치를 요구했지만 수포로 되고 이후 부산대에 한의학 전문대학원이 설치됐다. 정부는 한의사들에게 당근을 주는 식으로 분쟁을 종결시켰다. 이 사항들은 한약분쟁과 상관없이 한의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것들이었다. 이와 함께 한의약발전기금 마련과 한의약육성법 제정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한약분쟁이 원만하게 마무리되는 과정 속에 ‘S’ 전 장관의 정책조정과 행정능력이 주효했다는 평가이다. 그는 엄청난 사회적 문제였고 3년이나 끌었던 한약분쟁을 몸으로 뛰면서 소리 소문 없이 진정시키는 놀라운 조정능력을 보여줬다. ‘S’ 전 장관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한약분쟁’(한약조제권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해 복지부 공무원들로부터 ‘역대 가장 일을 잘한 장관’이라는 평을 얻었으며, 이익집단의 양 축이었던 한의사협회와 약사회 모두 그의 탁월한 화합 및 조정능력을 인정해 감사패를 각각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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