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태
고려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

요즘 대세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온갖 미디어에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이고, 학회지에 특집으로 실리기도하고, 각 학회의 특강제목이기도 하다.

시중에서는 이세돌과 알파고 이야기가 주류이지만, 의료계에서는 IBM 왓슨 이야기가 관심거리다.

이런 이야기와 맞물려 있는 뉴스가 ‘미래에 없어질 전문직 1순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고, 회계사·의사·변호사와 같은 지금 잘나가는 직종이 맨 먼저 없어질 것이란 예상을 말하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공부 좀 잘했다고 별 것 아니야, 쟤들 얼마 안 있으면 무직자 된다네…”하며 통쾌해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의사 직종은 없어지지 않을 것=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 잘 생각해 보면 변호사, 회계사는 없어지더라고 의사라는 직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다른 나라에서는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쯤 이야기가 되면 독자들은 속으로 글쓴이를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이라고 비웃으리라.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시라. 왓슨 컴퓨터를 이용해 진료를 하자면 대단히 고가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컴퓨터를 쓰든, 머리를 김이 나도록 뺑뺑 굴리든, 삼십초를 진료하든, 이십분을 진료하든 모두 같은 수가로 통제된 상황 아래 있는데, 누가 얼마 되지도 않는 기본 진료비를 벌기위해 어마어마한 고가의 컴퓨터에 의존하겠는가? 정부가 아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나서서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최첨단 기술이 될 것이다. 정부나 심평원이 의사들 배불리는데 국민이 낸 귀한 세금이나 보험료를 쓸 리가 만무하다는 나의 믿음이 틀렸을까?

그럼에도 모두들 이것이 코앞에 닥친 현실인 듯 말하는데,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적정한 진료 수가의 회복이 있어야 의료도 살고, 첨단 기술도 산다는 것이다. 첨단의 고가 기술을 소비할 시장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헐떡거리고 있는데, 대통령 아니라 하느님이 나서도 새로운 시장을 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시장도 없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면 어디다 쓰자는 것인지…. 외국에 수출하면 되겠지만 내수시장이 없는 기술이 과연 해외에서 잘 통할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정부가 주장하는 차세대 먹거리 사업은 근본적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차세대 먹거리산업 재검토 필요= 의학 지식은 공공재이므로 위대한 우리의 정부가 인류의 행복을 내세우며, 한국 의료계를 주무르듯 IBM을 설득, 압박하여 이 기술을 인류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공표하도록 하는 날이 온다고 가정해 보면, 지금 우리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든다.

고도의 의학 지식이 개인의 두뇌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컴퓨터에 의존하게 된다면 의과대학에서 수많은 강의를 하며, 시험을 보며 학생을 괴롭힐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초기에는 빠르게 자판을 두드려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여겨지겠지만, 조금 더 기술이 발전하면 컴퓨터가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알아듣고, 정리하고, 수많은 정보 중 가장 적절한 진단과 치료에 관한 지식을 찾아내어 화면에 제공하고, 심지어는 부드러운 소리로 질병에 대한 설명까지 해주는 시대가 온다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의학교육이 필요할 것인지, 정말로 필요하다면 어느 분야에 어떠한 방식으로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듯하다.

◇시대에 따라 의학교육도 변해야= 그렇지만 요즘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의학교육의 변화가 시도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 침을 튀기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바꾸어야 하냐고 반대를 하는 교수가 많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변화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필요해서 그런다고 좋게 이야기하면, ‘변화가 왔다는 증거가 있냐?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소위 말하는 그놈의 에비던스(evidence)를 요구한다. 끝까지 버티는 것도 힘이고 권위라 믿고 있는 교수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학 사회에서, 현실과 미래의 변화는 간과되고, 과거의 교육방식으로 방치된 학생들의 장래가 위태로워 보이고, 우리의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미래모습을 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의사평론가>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