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와 차흥봉 두 사람의 갈등은 역사가 길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됐으니 30년이 넘는다. 개인적 갈등이라기보다 의료보험(이하 의보, 현 건강보험)통합을 놓고 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이하 ‘C 전 장관’)은 대표적 찬성파였고 김종대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이하 ‘K 전 실장’)은 대표적 반대파였다. C 전 장관은 의보 주무과장 때 퇴직하고 학계에 투신, 의보통합 등 개혁적 사회복지제도를 주장해 오다, 1999년 5월 보건복지부장관에 취임, 의료개혁을 단행한 사람이다. K 전 실장은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실시할 때 주무과장이었으며, 그 때 이후 줄곧 의보통합을 반대하는데 앞장서온 인물이다. 1999년 6월 당시 유력한 보건복지부 차관후보로 거론되던 K 전 실장이 돌연 직권 면직됐다. 정부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을 통합을 추진했는데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K 전 실장은 “C 전 장관이 부임한 지 한 달밖에 안된 1999년 6월 복지부 실·국장을 모아놓고 의료보험 전면통합 방침을 일방적으로 밝혔다. 내 건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의보통합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건의문을 만들어 기자실에 배포했다. 이를 빌미로 C 전 장관이 나를 직권 면직했다.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강행하기 위해 걸림돌을 미리 없애자는 의도였다고 본다”며, 의보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단일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동일하게 보험혜택을 보는데 직장가입자는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내고 지역가입자는 재산·소득·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는 등 보험료 부과기준이 다른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00년 7월 정부는 부과체계는 기존대로 이원화하는 방식으로 남겨두고 건강보험을 통합시켰다.

2011년에 K 전 실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라는 해묵은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열었다. 지난 2012년 1월 건보공단 쇄신위원회를 출범시켜 노사가 합심해 건보제도 개혁을 위한 실천적 보고서를 최근 내놓으며 논의가 금기된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보고서에는 건보료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하면 가입자 80~90%의 보험료가 줄어들 것이란 연구결과가 담겨있다. K 전 실장(이사장)은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될 때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보험과장이었다. 1988년 전 국민 의료보험은 그가 의료보험국장으로 일하며 제도의 기반을 마련했다. 재산, 소득, 성별, 자가용 등 얄궂은(?) 기준으로 매기는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과방식은 1988년 김 이사장이 체계를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단일화는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시도다.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12년간 학계에 있으면서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기존 체계의 문제점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며 “다시 건보공단 이사장을 하게 된 것은 건강보험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라는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근로소득 외 별도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와 많은 소득이 있지만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는 이들에게는 보험료를 더 내게 하고, 소득이 거의 없지만 전월세를 재산으로 간주해 많은 보험료를 내는 지역가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월 자체적으로 꾸린 부과체계개선기획단이 만든 개선안을 발표하려다 발표 하루 전 이를 취소했고, 이후 여론과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하자 여당과 정부가 협의체를 만들어 추진한다고 했지만 결국 이마저도 중단 상태다. 보험료를 더 내야 할 고소득층의 눈치를 보다가 정부와 여당이 이를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K 전 실장(이사장)은 퇴임 직전인 2014년 11월초 퇴임 뒤 자신의 보험료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공개해 화제가 되었다. “(생활고로 동반자살을 했던) ‘송파 세 모녀’는 소득이 거의 없지만 전월세가 재산으로 간주돼 한 달에 5만원 넘게 내야 했지만, 나는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연간 수천만원의 연금 소득이 있음에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고 밝힌 것이다. K 전 이사장은 “새 국회에서는 이런 모순된 부과체계를 반드시 개선해야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건강보험이 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선진복지국가들처럼 보장성을 강화해 ‘아파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K 전 이사장은 대구·경북(TK)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공무원에서 1999년 사직한 뒤, 2006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원내대표 자문위원장을 맡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2011~2014년)에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거의 평생 새누리당과 가까웠던 그가 올해 3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현재 보건의료 분야 정책위원을 맡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3년 동안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소득이 많으면 많이 내고 못 벌면 덜 내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만들려 했는데 정부와 여당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권교체가 돼야 부과체계 개편을 중심으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개혁이 가능하겠기에 옮긴 겁니다.” K 전 실장은 “건보공단 이사장 시절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거의 다 만들어놨는데 현 정부와 새누리당이 시간만 끌면서 추진하지 않았다”며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보면 임금에게 3번 건의해도 이를 듣지 않으면 떠나라는 말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에 3번이 아니라 3년 동안 얘기했는데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자는 K 전 실장의 행보에 대해 ‘이유 있는 변심’이라고 본다. 바로 지금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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