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균
서울 성북·이정균내과의원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송해면 등 4개 읍·면의 경계에 놓인 고려산(高麗山·436m)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4월 중순 이후에 30여만 평 능선과 비탈 북사면에 연분홍 꽃바다를 이루는 진달래 군락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불타는 고려산 진달래 군락은 고려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m봉까지 1km에 걸쳐 펼쳐진다.

고려산 정상에 서면 강화도 전경(全景) 뿐 아니라,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멀리 개성 송악산 등이 한 눈에 들어오며, 사통팔달 전망에, 산을 걷기에도 힘들지 않은 4km 정도의 아름다운 능선길은 보지 못한다 해도, 낙조대는 진달래꽃 보는 것처럼 여행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마니산과 첨성단, 고려산 기슭 송해면 부근리에는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출생지로 전해오며 강화도의 향토 지지(地誌)인 강도지(江都誌)에 따르면 연개소문의 출생이야기가 나오며, 강화도 향토 유적 26호로 지정된 하점면 지석묘 앞 고인돌 공원에는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고려산의 옛 명칭은 오련산(五蓮山)이었다고 한다. 고려산에는 백련사, 청련사, 적련사(적석사) 등 세 가람이 있고, 그 사찰 이름의 내력이 흥미를 더한다. 적석사 대웅전 상량문, 백련사 연혁 내력에는 고구려 장수왕 4년 병진년(416)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천축조사가 이산상봉 오련지(五蓮池)(다섯가지 연꽃)에 오색 연꽃이 찬란히 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색 연꽃을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그 연꽃들이 떨어진 곳마다 가람을 세웠는데 바로 가람의 이름이 되었다. 그 절들의 이름은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 등 다섯 개 사찰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천축조사는 천축국의 스님 또는 인도의 고승으로 ‘버전’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금은 적·백·청련사 세 사찰만이 남아 있으니 참으로 오묘한 전설이다.

최근 지방마다 산을 타면서 지맥(支脈) 산행이 유행하고 있다. ‘강화지맥’이란 정식 명칭은 아니나 강화도 동북단 양사면 철산리 해안에서 출발하여 별악봉, 성덕산, 봉천산, 시루메산을 거쳐 고려산, 혈구산, 퇴모산, 덕정산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나누어지는 산줄기로 정족산, 길상산으로 가거나, 남서쪽 진강산, 마니산으로 강화산들을 종주하기도 한다. 고려산 산행은 적석사 코스를 가장 선호하고, 백련사 코스, 청련사 코스도 흔히 이용된다.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300년 된 은행나무 등 고목들이 사찰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진달래 군락만 보려한다면 백련사 코스가 가장 가깝다. 고려산 정상 군부대가 이용하는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도로가 나온다. 다시 10여 분 오르면 군부대 아래에 도착한다. 바로 정상에서 북사면 방향으로 진달래 군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는 혈구산, 석모도, 진강산, 별립산, 석모도 해명산이 눈에 들어온다. 강화섬 동북쪽 필자의 고향 뒷산은 금동산이다. 바다 건너는 개풍군이다. 낙조봉까지는 4km 정도의 능선길로 이어진다. 부드러운 흙길이다. 울창한 나무들 소나무 사이에는 간간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아마도 그 모양을 보고 심훈은 진달래 동산 작은 무더기 꽃을 보고 색동저고리 입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했을 듯싶다.

▲ 고려산 정상 1Km에 걸쳐 펼쳐진 진달래군락.

봄꽃 축제,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채 무리지어 핀 연분홍의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였다. 하얀 목련은 우아함을 자랑하고 화사한 벚꽃은 농염한 여인의 모습으로 상춘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봄꽃을 소재로 한 푸짐한 축제가 열려 봄을 맞는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초여름에 피는 철쭉이 정열의 화신이라면 진달래는 수줍은 새색시의 두 볼처럼 청순함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봄꽃 중 하나다. 민족의 애환을 표현했던 노래의 소재로 많은 시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짧은 봄 아쉬워 골짜기마다 꽃 세상 무릉도원 따로 없다.

봄꽃이 전국의 산야를 곱게 물들이고 있다. 분홍색 진달래가 산을 뒤덮은 나의 고향 인천광역시 강화섬 고려산에는 진달래 축제 기분에 들떠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산봉우리, 고려산 정상 북사면 님 향해 달아오른 분홍빛 춘심(春心), 눈앞에 온통 분홍빛 진달래의 바다가 봉우리로 둘러싸인 30만평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분홍 물감을 쏟아 부은 듯 온 산이 벌게지는 진달래 명산들이 있다. 척박하여 웬만한 수목은 살아남지 못하는 산록에 생명력 질긴 진달래들이 뿌리 내려 광대한 군락을 이루었다. 산록의 넓디넓은 진달래 화원에 들면 가슴이 저절로 뛴다.

강화 고려산은 수도권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넓은 진달래 밭을 가진 산이다. 원래 진달래 축제기간은 4월 12일부터 29일까지다. 고려산 북쪽 백련사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20분 쯤 걸어올라 가면 드넓은 진달래 밭이 보인다. 축제기간 중에는 축제장인 고인돌광장과 군부대 입구 구간 약 2km에 걸쳐 진달래 밭이다. 아래쪽에서 위로 보는 역광을 받은 진달래밭 풍광이 한결 더 뛰어나다.

‘참꽃’ 진달래, 화전, 술, 화채, 그래서 우리 생활 속의 꽃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 진달래는 우리 생활 속에서 가장 친근한 꽃이다. 여수에서 함경도까지 한반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참꽃’ 이라고도 한다. 음력 삼월 삼짇날 아낙네들은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으며 봄놀이를 즐겼다. 남정내들은 진달래로 술을 담가 먹기도 했다. 당진의 면천 두견주가 대표적인 진달래술이다. 진달래 화채는 잔칫상에 내놓는 별미식.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데치고, 오미자 즙이나 꿀을 섞어 내놓는다.

지난겨울 가뭄에도 불구하고 후두둑 잦은 봄비, 봄산에 꽃물이 스며든다. 바위틈, 억새밭, 허리 굽은 솔숲, 진달래는 핀다. 신작로의 벚꽃, 초록정원의 백목련처럼 화사하거나 우아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봄바람에 튼 촌색시 볼같은 분홍꽃, 텃밭 뒤, 선산에서부터 개울 건너 뒷산까지 온통 산자락을 붉게 물들여 놓았다.

고려산은 높지도 않고, 기암괴암이 뛰어나지도 않는 범산(凡山)이다. 그러나 봄이면 고향마을 뒷산 같은 작은 산으로 탐방객들이 순례객 되어 천리길마다 않고 찾아온다. 낮은 구릉 작은 산비탈 고지까지 촘촘히 스며들며 분홍꽃밭 일군 만상홍(滿山紅) 두견화 탐방은 성지 순례코스다.

화사한 벚꽃, 하루 바람에 쌀쌀맞게 져버리고, 짧은 눈길 한번 주고, 지나치듯 저버리는 벚꽃이 야속했지만, 겨우내 꽃님 기다리던 짝사랑의 산등성이엔 진달래가 툭툭 지천으로 터져 펑퍼짐한 산등을 다 녹여준다. 진달래 살가운 정에 산도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산도 사람도 연분홍 진달래 꽃바람에 바람났다. 봄바람이 요원의 불길처럼 덩달아 산도 바람났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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