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것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것은 단연 ‘질병’ 일 것이다. 병 없는 건강한 상태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간절한 바람이다. 하지만 21세기 첨단 의과학의 발전과 각광 받는 인공지능의 개발도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다.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는 ‘감염병’은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질환 자체의 위해 도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공포와 사회경제적 혼란도 엄청나 예나 지금이나 국가 차원의 큰 숙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의 넷째 옹주, 정조의 왕세자도 홍역으로 목숨을 잃었고, 1707년(숙종 33년)에는 평안도에서 발생한 홍역으로 단 보름 만에 1만여 명이 죽었다고도 기록돼 있다.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1960년대 후반까지 국내 일본뇌염 환자는 1천~3천명 가까이 발생해 매년 300~9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고,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두 해 전 2000년에는 전국적으로 홍역환자가 3만명 이상 생기기도 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신종플루가 유행해 확진환자만 75만 명이 넘었고, 지난해는 메르스 유입으로 국가 전체에 엄청난 혼란도 있었다.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인 요즘, 종간의 벽을 넘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크고 작은 유행이 지속되는 감염병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는 걸까?

가장 눈부신 발명품

인류의 보건향상에 ‘이것’ 보다 큰 효과를 나타낸 것은 깨끗한 물 말고는 없다는 말이 있다. ‘0.5㎖의 기적’이라 불리는 위대한 발명품. ‘백신’ 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질병을 미리 예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두창(천연두)의 딱지 가루를 흡입하는 인두접종으로 감염을 막고자 했고, 근대적 형태의 백신은 1796년 영국의 의사 제너가 소의 두창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접종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적으로 20세기 동안 3억~5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서운 감염병 두창은 백신이 개발된 지 200년이 안된 1980년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까지 많게는 수만명의 환자가 발생하던 디프테리아, 백일해, 폴리오, 홍역, 일본뇌염 같은 감염병들이 백신이 도입되고, 예방접종이 일상화되자 완전히 사라졌거나 한 해 수십 명 안팎의 환자만 보고될 정도로 잘 통제되고 있다. 예방접종이 인류의 평균수명을 늘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정과제 ‘예방접종 정책’

예방접종은 비용편익 면에서도 훌륭하다. 접종비는 해당 질병치료에 드는 비용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예방 중심의 공공보건 정책에서 예방접종은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 차례 받아야 하는 접종비 부담과 의료기관 방문 불편 때문에 가계와 육아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런 배경으로 정부는 2013년 ‘국가예방접종 지원 확대’를 중요 국정과제로 지정하고, 어린이 예방접종 전면무료화 정책을 2014년부터 시행 중에 있다. 아울러 청소년과 어르신에게 까지도 필수예방접종에 대한 지원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병의원을 통한 어르신 무료 인플루엔자 접종을 시작했고, 올 6월에는 암 예방 목적으로 개발된 유일한 백신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의 청소년 대상 지원도 앞두고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은 국민부담은 낮추고, 공동체 전체의 면역력을 높여 미래건강을 지켜가고자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 정책이다.

인류가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는 질병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부터 질병 극복은 시작된다. 4월 마지막 한 주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예방접종주간(2016.4.24~30)’이다. 백신이 가져다 준 놀라운 변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주변의 어린이와 어르신들이 빠뜨린 예방접종은 없는지 살펴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예방은 접종으로 시작된다는 것,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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