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재정(이하 '건보재정')을 사실상 기금화 하는 방안이 다시 한 번 추진된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열고 건강보험을 포함한 7대 사회보험의 여유자산을 적극 운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계부처의 협의가 남아 있고,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연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지원한다. 담뱃값으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6%를 지원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정부는 건보료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한다. 이 같은 방식은 당초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회는 관련 제도를 1년 연장했다. 원칙적으로는 내년 말이면 건강보험의 현행 국고지원이 끝난다. 기재부 입장에서는 다소 모호한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생겼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건강보험 자산운용 체계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건보재정이 4년 연속 흑자를 내면서 누적 적립금이 17조원에 달하지만 수익률은 7대 사회보험 중 가장 낮은 2.2%에 불과해 자산운용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강보험 자산 운용인력도 5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자산운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서 재정건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기재부가 지난 3월 29일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열고 재정건전화 방안을 발표한 것도 결국 건강보험을 겨냥한 것이다.

건보재정 적립금을 적극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특히,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현행 건보재정 국고지원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지만, 관계부처 간 의견이 엇갈리고 시민단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건보재정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국고지원 방식을 개선할 예정”이라며 “건보 국고지원이 내년 말까지 연장됐다는 점에서 관계부처 협의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런 논의가 2004년 8월 기획예산처의 ‘2004 기금존치평가보고서’ 및 국회 예산정책처의 ‘2003 결산분석보고서’를 통해 건보재정의 기금화 주장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국회는 이 보고서를 통해 지역가입자 건보료의 절반을 일반회계예산, 국민건강증진기금 등 국가재정을 지원하는데도 불구, 건보료와 수가 등을 결정하고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정부 예산심의권을 갖고 있는 국회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기금화가 투명성 확보에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지적했으나, 실상 건보재정 운용에 대한 주도권을 건강보험공단이나 복지부로부터 가져오겠다는 의미이다. 즉, 건보재정을 자유롭게 운용함으로써 정부 예산집행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2004년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건보재정 투명성 차원에서 국회가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건보기금 신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의 질문에 “국회 감사위원회 등에서 투명성은 확보된 상태지만 재정의 건전성은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기금은 정치적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기재부는 “건보재정이 202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25년 고갈될 것”이라고 지난해 예측했다. 불과 10년 뒤면 재정난에 허덕일 것이므로 지금 충분한 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적립금 17조원’을 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 축소 명분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냥 놔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해마다 수 조원이 건보료로 들어갔다. 재정 당국은 수년 전부터 국고 지원 규모를 줄이고 싶어 했다. 한 전문가는 “기재부는 건보가 17조원을 쌓아두고 ‘이자 놀이’를 하고 있으며 정부가 빚을 내(채권을 발행해) 수 조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보재정 기금화에 대해 당사자인 건강보험공단의 반발은 거세다. 건보공단 노조는 “건보재정 적립금이 기재부가 말하는 운용 명목으로 묶이는 순간, 건보 적용 확대나 보장률 향상은 영원히 물 건너간다”고 강조하며, 국고지원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건보공단 노조는 “건보재정 적립금은 건강보험 적용확대에 사용해야 한다”며 “기재부의 발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다. 단기자금 성격이 강한 건강보험의 특성을 감안해야 하므로, 향후 기재부는 복지부와의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올 하반기나 내년에 ‘국고 20% 의무 지원’ 한시조항의 재연장 여부를 놓고 재정 당국과 야당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적립금 규모가 클수록 재정 당국에 유리할 수 있다.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실탄 비축 차원에서 적립금을 쓰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지만, 어떤 대선 후보든 건강보험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을 때, 건강보험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단위로 재정 운영을 하는 사회보험이고, 걷은 건강보험료는 그해 모두 국민의 의료비로 쓰는 게 이상적이라는 걸 염두(念頭)에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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