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4월 6일 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신인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이하 식약본부)’가 공식 출범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과 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를 진단하고 유해식품의 제조 유통과정을 감시 지도할 기관으로 세간의 기대가 컸다. 출범했던 그 해 잇따라 유해 논란을 일으킨 화학간장, 우유, 돼지기름 등은 국민주요 소비식품으로 첫 업무를 시작한 식약본부가 안전성 여부를 검증할 최우선 과제로 선정되고, 이러한 식품․의약품의 유해여부 판정과 함께 현장 감시활동에 총력을 쏟게 된다. 그해 10월까지 우유, 두부, 라면, 간장, 김치 등 국민들이 많이 먹는 100대 식품에 대한 위해 여부검사가 집중적으로 실시됐다.

앞서 정부는 식약본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민정부 시절 31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한 김양배 장관은 1996년 3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관리체계를 일원화하고, 식약본부와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에 6개 지방식품의약품청을 복지부 소속기관으로 설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 장관은 “식약본부를 1997년 상반기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같이 강력한 통제권을 갖는 정부조직법상의 독립된 외청으로 확대 개편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설된 식약본부는 복지부의 식품국, 약정국 및 국립보건원의 일부 기능과 국립보건안전연구원을 흡수하게 되며, 본부장은 관련 권한을 위임받아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식약본부의 조직은 독성연구소를 비롯해 식품, 식품첨가물, 의약품, 생약 및 생물학제제, 의료기기 등 5개 안전평가실로 구성됐다. 식약본부는 또 세계 각국의 식품 및 의약품 기준과 규격을 수집, 분석해 우리 실정에 맞는 위해(危害) 요소 판정기준을 마련하고 검사하는 한편 신물질 등의 독성연구 및 평가를 담당하게 된다. 6개 지방청은 식약본부의 지휘 감독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부정불량식품 및 의약품에 대한 현장 감시 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한국형 FDA’를 창안하고 기획하고 조정한 공직자는 최장수 6년 6개월이라는 1급 기록을 세운 김종대 기획관리실장(이하 ‘K 전 실장’, 사회복지정책실장,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 역임)과 함께 식약본부에서 과장으로 재직하던 장준식 과장(이하 ‘J 전 과장’)이다. 이 두 명의 공직자는 식약본부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 불철주야 노력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Korea Food & Drug Administration, 약칭 KFDA)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정부도 이 같은 조직으로는 업무에 한계가 명료하다고 판단하고 당초 청사진보다 일 년 늦은 1998년 3월 3일 식약본부를 식약청으로 승격시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35대 장관인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이 취임한 날과 식약청의 출범일이 같은 날이다.

‘국민의 건강과 보건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모토로 출범한 식약청은 전향적이며 예방 중심적인 식품․의약품 체계의 구축 운영을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관련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었다. 하지만, 식약청의 조직이 위상 정립에 실패하면서 우여곡절에 휩싸였고,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표류했던 적이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서울 불광동에 위치하던 식약청은 내내 불미스런 일들이 터져 나왔고 그 때마다 사후약방문 식의 미숙한 행정을 집행해야 했다. 필자는 취재 일선에서 직접 불미스런 현장을 목격해야 했고 그 때마다 전문기관으로 위상 정립에 ‘실패론’을 내세워 오락가락 행정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적이 많았다. 게다가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 눈치 보기와 이익단체 등살로 인해 복지부동 행정이 나타나면서 신뢰가 떨어지곤 했다. 의약품 뿐 아니라 식품 분야에서도 식약청의 오락가락 행정은 이어졌다. 일례로 지난 2012년 10월 식품회사인 농심이 생산하는 라면류 일부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보도이후 국민들의 불안감은 이어졌으나 식약청은 곧바로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식약청은 여론은 물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질타 끝에 벤조피렌이 함유된 라면의 회수조치를 취했으나, 이후 식품 전문가 등이 라면에 함유된 미량의 벤조피렌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식약청의 조치는 무색해졌다. 2009년 발생한 탈크(활석․滑石을 분말로 한 것) 의약품으로 인해 혼 줄이 났던 것을 반복시키지 않기 위한 이른 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의 대응이었다.

식약청이 인사는 물론 식품, 의약품 관련 정책 등에 대해 복지부의 눈치를 보고 독자적인 법률 입법 추진권이 없다보니 여론의 향배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더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고, 갈등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일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식약청은 ‘독립 기관’을 표방했지만 여전히 복지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산하기관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이익단체들의 집중공격을 받는 일까지 생겼다. 2012년 10월 전국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 처방권과 ‘레일라정’ 등의 문제로 오송 식약청 앞에 결집해 식약청 폐지 및 식약청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천연물신약 처방권은 식약청이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라 복지부가 추진해 온 정책임에도 식약청으로 불똥이 튄 것이다. 이는 그간 식약청에서 의약품 안전관리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다 보니 빚어진 일로 풀이되고 있다. 식약청은 2010년 충북 청원군(지금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으로 이전했으며,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2013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명칭을 변경해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 승격됐다. 한국형 FDA를 창안한 ‘J’ 전 과장(식약청 의약품안전국장, 서울지방식약청장 역임)은 필자에게 “시대는 여성시대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 식약처 직원들은 남성시대를 지향하고 있어 애석하다”고 했다. “즉, 관리, 규제 일변도의 행정으로는 우리나라의 식약 행정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으며, 결국 퇴보할 것”이라는 지적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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