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명제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중에 모든 것을 ‘서투른 목수가 연장을 나무라듯’ 주위 상황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원천기술 격차를 예로 들면 시설과 장비가 부족한 탓이라는 식이다. 본질은 시설과 장비가 아니다. 필자는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보건산업 정책 중 오송생명과학단지나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 같은 대규모 연구개발 단지 조성 과정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 수천억 원짜리 장비를 산다. 하지만 그 장비를 돌릴 전문가를 찾으면 몇 명 없다. 다른 분야도 똑같다. 디테일에 강한 전문가를 수배(물색)하면 한 명이 고작이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돈보다는 사람이다. 한 우물을 파더라도 깊이 팔 줄 아는 사람을 많이 키워내는 게 답이다.

보건복지부의 최대 단점 중 하나가 사람을 키우는데 약하다는 점이다. 다른 중앙부처 차관들은 소속 부처 장관으로 쾌속 승진하는 게 허다하지만, 복지부 출신 차관들은 장관으로 기용된 사례가 전무하다. 필자가 20여년 넘게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가장 애통하게 생각해온 점이다. 고인이 된 최선정 전 장관도 보건복지부차관을 거쳐 노동부장관을 역임하고 난 뒤에야 보건복지부장관에 기용됐다. 또 한 번의 사례는 참여정부 때 유시민 장관(44대)과 기획예산처 출신인 변재진 차관이 있었으나 정권 말기에 변 차관이 장관(45대)으로 승계한 경우도 역시 타 부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9대에서 52대에 이르기까지 복지부 출신 관료가 차관에서 장관으로 승진한 사례는 없는 셈이다.

복지를 시혜로 여기던 권위주의시대의 그림자를 아직도 못 지운 것인지, 정책의 파트너를 대등한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풍조마저 있다. 상대방을 지원의 대상으로 보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면 민원이라도 늘어날까 겁부터 먹는 것이다. 신약개발 하라고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해도 개발할 인력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진짜 필요한 게 뭔지는 현장이 더 잘 안다. 제약기업들에 물어, 필요하다면 그들더러 커리큘럼을 짜라고 해서 졸업하면 취직시키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약산업특성화대학원’을 만들었다. 똑 같은 방식으로 의료기기 쪽도 그렇게 했다. ‘의료기기특성화대학원’ 고도화를 통한 전문인력 양성이다. 동국대, 성균관대를 선정해 대학원을 운영한지도 만3년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2기 사업을 준비하면서 특성화대학원의 추가지정, 지원기간 확대, 기업과의 연계 프로그램 강화, 대학별 전문분야 설정, 학생 역량 강화를 위한 각종 지원금 마련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의료기기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특성화대학원에서 기업 맞춤형으로 양성해 배출한다면 인력난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령화 사회 쪽도 형편이 비슷하다. 고령화 사회는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복지예산 늘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은퇴라는 말이 없어지는 시대에 개인이 대비하려면 재교육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 일을 누가 하는가. 보건복지부는 이 일을 할 사람을 키우기 위해 ‘고령친화특성화대학원’을 또 만들었다. 고령화사회는 새로운 시장을 연다. 고령자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려면, 고령자를 먼저 알아야 한다. 노화의 과정을 이해하면서, 그 것을 제품 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 인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관련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아무리 예산을 많이 확보하고 갖가지 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로 인한 예산 낭비의 사례를 많았던 터라 전문 인력의 양성은 절실한 과제인 셈이다.

우리에게는 통일의 과제가 있다. 다른 체제로 떨어져 살아온 지가 벌써 70년이다. 이미 다른 문화라고 인정하는 게 현실적일 수도 있다. 통일비용을 걱정하는데 그 걱정할 시간에 탈북 주민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 인력을 통일 후 고향으로 돌려보내 그 곳에서 주민에게 자본주의 적응훈련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통일에 대비한 지역사회복지이고, 이를 담당할 인력을 키우자는 게 ‘통일복지특성화대학원’이다. 정부의 프로그램도 결국에는 사람이 행하는 일이다. 프로그램을 아무리 완벽하게 짜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그간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인재를 키우는 게 정치의 요체’라고 설파한 선현의 가르침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상황과 환경에 따른 단기적인 정책보다 사람을 키운다는 거시적 안목의 정책이 인재양성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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