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 겸 대변인

의료분쟁조정법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환자의 사망 또는 중상해인 경우에 피신청인인 의료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을 강제로 개시하도록 하는 사안이 쟁점의 중심에 있다. 사망의 경우 기저질환, 의료사고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상황에서 강제개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며, 중상해의 경우에도 범위, 기준 등이 명확하게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의료전문가 등의 여론 수렴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 및 의사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조정의 강제개시 문제는 의료분쟁조정법의 입법 취지인 의료사고에 대한 신속·공정한 피해구제와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에 반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의료분쟁조정법의 존립 가치도 훼손한다는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금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은 법 제정의 근본 취지 및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조정의 강제개시가 될 경우 의료분쟁을 회피하기 위해 의료인의 소신진료가 위축되는 진료환경이 조성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이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도 분쟁조정의 법제화를 통해 강제로 개시하도록 하고 있지 않는데, 이는 분쟁조정의 강제 개시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를 반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과 같은 기피 전문과목이 확산되어 여러 진료과목에 대한 의료접근성이 저하될 수 있고, 의료분쟁의 가능성이 농후한 중증 환자에 대한 진료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등 왜곡 진료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소송 과정 이전에 조정 등을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소송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신청인의 입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조정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 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격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조정절차가 소송 제기를 위한 증거 수집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의 문제도 충분히 발생할 것이라고 쉽게 예측 가능하다.


조정의 강제개시라는 부당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추진 이외에도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다수의 불합리한 조항들이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원활한 이용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감정부에 감정위원 5인 중 보건의료인은 2명으로 의료인의 비중이 낮아 객관적이며, 공정한 감정 및 조정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의료사고 조사 불응행위에 대한 벌칙 및 과태료 규정은 자율적 분쟁 해결이라는 분쟁조정제도의 취지에 역행한다. 아울러 보건의료인에게 과실이 없는 분만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비용과 손해배상금 대불 비용을 보건의료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의료분쟁조정제도가 활성화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의료전문가 등과의 충분한 숙의과정을 통해 반드시 개선 방안을 마련해 국민과 의료인이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 구제는 물론 건전한 진료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금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은 보다 전문가 단체의 의견에 귀를 기울려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의료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를 통해 의료질서를 문란하게 해 의료체계의 정상적인 작동기전을 와해시킴으로써 보건의료인의 정상적인 진료활동을 제한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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