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제도는 개인이 어떤 불행을 당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 중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이은 제5의 사회보험으로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신체 및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비중 7% 이상)에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인 2017년(내년) 고령사회(14% 이상)로 변하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를 피할 수 없다. 서구 산업국가들이 100~150년 걸린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26년밖에 안 걸린다는 점은 급속한 산업화처럼 급속한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는 양극화도 심화시킨다. 특히, 1‧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인구로 유입되는 향후 20~30년 후면 한국은 세계 제일의 고령국가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노인성 질병도 늘어나면서 지금의 가족 구조로는 노인 부양이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 정부는 고령화 문제를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르다. 건강보험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이나 치매와 중풍과 같은 노인성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받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 인정신청'을 해서 요양등급판정을 받아야 한다. 노인과 65세 미만이라도 치매․뇌혈관성질환․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은 신청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첫 업무보고를 하면서 2007년 7월에 노인장기요양보장제를 시행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았다. 2004년 6월 무렵에 시안이 확정될 뻔했다.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사인을 하려 했다. 김 전 장관이 바뀔 거라는 얘기가 돌면서 일단 보류됐다. 후임자의 몫이라는 이유에서다. 김근태 전 장관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다. 복지부 내 토론이 거듭됐다. 그렇게 1년이 갔다. 2005년 5월 말 열린우리당과 당정협의에서 가닥이 잡혔다. 2007년 7월 시행하되 여건이 안되면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2005년 9월 1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송재성 전 복지부차관(S 전 차관)이 법안 시안을 브리핑할 때 다양한 시각의 질문이 쏟아졌다. 어떤 기자는 1년이 늦어진 이유를 추궁했고, 다른 기자는 여건이 미미한 상태에서 너무 서두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필자는 확신은 안 들지만 후자 쪽 의견에 약간 기울어있었다. 너무 큰 제도인데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덤볐다가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S 전 차관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이 맞긴 하다. 필자는 S 전 차관이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2000년 의약분업 악몽 때문으로 판단했다.

2005년 당시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팀장 보직을 죽으러 가는 자리로 간주하고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도인데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제도 도입 이후에 ‘민원대란’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란 소리였다. 김원종 전 과장(이하 ‘K 전 과장’)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팀장을 맡고 보니 법안 초안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2007년 제도를 도입하려면 최소한 2006년 상반기까지 모든 법규가 완비돼 있어야 하는데, 이 상태에서 제도 도입을 밀어붙이면 ‘민원대란’이 발생할 게 명약관화했다. 더구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이 예정된 2007년은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던 해였다.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빚을지도 모를 혼란이 자칫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K 전 과장은 시행 시점을 2007년에서 2008년으로 연기할 것을 건의했다고 회고한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새 제도는 새 정부의 책임 하에 시행하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직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2005년 말까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개정도 아닌 제정법을 석 달 만에 정부입법절차를 마치고 국회까지 제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나 다름없다. 정부입법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적게 잡아도 최소한 5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관계 부처 및 이해관계자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고 협의를 모두 마쳐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이해관계자가 많을 뿐 아니라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도 쉽지 않다. 그런 법을 석 달 만에 국회에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직원들은 이 무지막지한 명령을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이행해줬다.

당시 복지부는 다른 부처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른바 ‘사랑의 짝대기’ 제도였다. 팀장과 팀원들이 서로 같이 근무하기를 원하는 상대방을 찍어 상호합의로 자신의 보직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보건복지부의 많은 유능한 직원들이 나를 믿고 기꺼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팀을 선택해 줬다. K 전 과장은 당시의 직원들의 선택과 노력을 참으로 고마운 일로 회상한다. 필자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에 기여도가 큰 공직자를 꼽으라면 당시 노인정책국장을 맡고 있었던 박하정 전 국장(P 전 국장)과 김원종 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팀장(이하 K 전 과장), S 전 차관(송재성 전 차관)을 택한다. 그들의 탁월한 경륜과 지휘 하에 직원들과 밤을 낮 삼아 일하고 관계기관을 쫓아다니며 재촉을 한 결과, 2005년 12월 말에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장관 교체(유시민 장관이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 기재부와의 미세한 업무조정 등으로 실제 제출은 해를 넘겨 2006년 2월에 이뤄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원래 2001년 건강보험재정이 망가져 재정안정대책(5.31대책)을 만들 때 선보였으며, 당시 발표한 수많은 대책 중의 하나였다. 수발서비스만 필요한 치매나 중풍에 걸린 노인들이 종합병원의 병실을 차지하고 있어 건보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이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자는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7년이 지난 2008년 7월부터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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