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은 노무현 정부가 도입(당시 명칭은 ‘기초노령연금’)한 것으로, 소득하위 70%에 속한 65세 이상 노인에게 10만원이 지급됐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후보가 이를 확대해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씩 드리겠습니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이 공약은 노인계층에게 상당한 반향을 몰고 왔다. 정치 분석가들은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인계층의 결속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공약이 애매했다. ‘국민연금’과 중복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실제로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에는 ‘국민연금과 연동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야당은 이를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 이리하여 박근혜 후보가 ‘모든’과 ‘20만원씩’을 진짜 약속했던 것인지, 아니면 국민이 알아서 새겨들을 거라고 믿었던 것인지는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다. ‘기초연금’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노인인구 추이다. 대통령선거가 있던 지난 2012년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약 555만명(인구대비 11.8%)이었다. 이 숫자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2015년에는 662만명(13.1%)으로 3년 만에 100만명 넘게 늘어났고, 2026년에는 전체인구의 20.8%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보건복지부의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된 K 전 보건복지부 국장은 예산을 뽑아보니까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여러 대안이 나왔다. 인수위의 안은 국민연금을 받을수록 기초연금을 더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국민연금 가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국민연금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동시키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기초연금’을 확대하려다가 국민연금이 흔들리면 대혼란이 불가피하고, 꼭 연동을 시켜야겠다면 소득과 짝을 지워, 소득이 많으면 덜 주는 것으로 설계해야 한다. K 전 국장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이하 ‘J’ 전 장관)도 이런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민연금은 법으로 정해진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나, 아직까지도 가입자비율은 5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이미 수급자가 된 노인들은 형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것은 국민정서 상으로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과 ‘20만원씩’은 이미 허언(虛言)이 된 뒤였다.

필자는 ‘J’ 전 장관이 지난 2013년 9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도중에 장관직을 사퇴한다고 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게 한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J’ 전 장관은 그해 9월 30일 전격적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10월 4일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장관직에서 진짜 사퇴한 이유를 밝히면서 두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청와대에 대한 입장이다. 그는 “대선 당시 공약은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해 모든 세대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통합’이 공약이었지, ‘연계’는 공약이 아니었다”며 “대통령 생각도 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대선 당시 공약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니냐”며 “내가 장관이 된 뒤 입장을 바꿨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기초연금 최종안이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것으로 수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J’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마 복지문제를 잘 몰랐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청와대에서 자신도 모르게 수정했음을 시사했다. 이도 아니면 비서실이 ‘J 전 장관’을 제쳐놓고 수정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통령과 면담조차 비서실이 막았다면 이건 심각한 일이다. 비서가 무슨 권한으로 장관의 면담요청을 제 선에서 막는단 말인가.

‘J 전 장관’의 퇴진에 여전히 두 가지가 의문이 남고 있다. 물러나는 사람 입장에서 오죽 가슴이 답답하고 할 말이 많았을까. 그렇지만 ‘J 전 장관’은 가슴속 사연을 다 털어놓지 않았다. 가급적 말을 아꼈다. 대통령에 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게다. 비록 절제해 한 말이지만 그냥 흘려 넘기기에는 찜찜한 대목이 남았다. 하나는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이다. 정말 비서실이 ‘J 전 장관’ 말처럼 장관도 제쳐놓고 정책을 결정했다면, 또 장관 면담요청을 제 멋대로 차단했다고 한다면, 비서실이 내각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과거식 청와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 새누리당이다. ‘J 전 장관’은 “내가 정부의 연계안을 들고 김기현 전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여러 의원을 만났는데, ‘우리 당은 절대로 이 안(연계안)을 못 받는다'고 했다”고 밝히고 ’J 전 장관‘의 입장을 지지했다가, 그런 식으로 나중에 뒤통수를 쳤다면 이건 모리배다. 소신과 원칙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정치인의 처신은 아니다. 동료도 배신하는 이들이 과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는가.

장관을 제쳐놓고 비서실에서 복지정책을 결정한 청와대, 장관 면담을 막은 비서, 동료를 배신하고 엉뚱한 소리한 새누리당이 정말 그랬는지 사실여부를 3년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J 전 장관’은 이 정권 출범에 기여한 인물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인수위 부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청와대와 당에서 세인이 생각하는 실세장관이 아니라 정책 결정과정에 빠지고 당에서 뒤통수를 맞는 푸대접을 받았다면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추세 속에서 저성장 경제의 고착화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경제학자들은 향후 40년간 세계경제성장률은 3%로, 그 다음 40년 동안의 그것은 1.5%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비관적인 상황과 어두운 전망은 복지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을 통해 어두운 전망을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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