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을 주도하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물러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하 ‘M 전 장관’)이 공석 중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지난해 12월 31일부로 임명됐다. 복지부 안팎에서는 국민연금 기금공사화라는 미션을 부여받은 ‘M 전 장관’이 형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이사장에 낙점됐다는 비아냥거림이 쇄도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장으로서의 적격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 하더라도 ‘M 전 장관’의 행보에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담뱃값 인상이 결국 세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데다, 메르스 당시 현장 공무원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M 전 장관’은 2014년 9월 담뱃값을 갑당 2000원 올리는 주역을 담당했다. 그 결과, 올해 걷히는 담배세가 1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보다 64%나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M 당시 복지부장관은 2014년 9월 담뱃값 인상을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단기적으로 가격 인상만으로 8%포인트 정도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작년 7월 복지부가 실시한 흡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남성 흡연율은 최근 1년간 35%로 5.8%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얘기한 만큼 흡연율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세수만 급증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서민들에게 세금을 부담시키는 ‘서민 증세’ 효과가 나타났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M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했을 때, 오락가락·우왕좌왕·갈팡질팡 행보를 보이면서 의료계와 관광업계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에까지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M 전 장관’은 2013년 12월 복지부장관에 임명됐으며 메르스 사태에 부실 대응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4일 경질됐다. 메르스 부실 대처에 대해 “우린 메르스를 잘 몰랐다”며 복지부장관 이임식에서도 책임을 지려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메르스 사태로 인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피해액이 2조7949억원, 그리고 여기에 한국인의 국내 관광 감소 피해액을 합치면 관광산업 전체에 미친 피해 규모가 최대 3조4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감사원의 메르스 감사 결과가 금명간 확정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질병관리본부장,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국장급 인사 3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중징계(해임, 정직, 감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원들은 무더기 징계를 받는 상황에서 당시 수장만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이상한 인사가 진행되고 말았다. 정부 관계자는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징계를 앞두고 있는데, 가장 책임이 무거운 소방청장은 현직에 복귀하는 건 난센스”라며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M 전 장관’은 재임 시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민생 공약인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작업을 백지화시켜 해를 넘겼다. 건보료 개편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국정과제로 선정된 의제다. 임대소득 등 추가 수입이 있는 부자 직장인에게 건보료를 더 많이 물리고, 자산이 많은데도 직장인 자녀에 얹혀 건보료 납입을 회피해온 피부양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저소득층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최소한의 건보료만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부가 17개월 동안 공들인 건보료 개편안에 대해 갑자기 발표 당일인 2015년 1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을 통해 건보료 개편 백지화를 선언해 모두를 멘붕에 빠트리기도 했다. 당시 연말정산 파동과 맞물려 장관이 청와대 눈치 보기를 했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M 전 장관’이 작년 12월 21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시민단체와 노동계 및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그의 ‘내정설’은 기정사실화됐다. 이 같은 실정(失政)을 저지른 ‘M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으니 ‘회전문’에 이어 ‘에스컬레이터’ 인사까지 나왔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목줄을 잡고 있는 상급기관이며 사실상 국민연금공단의 중요 결정사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복지부장관을 지낸 ‘M 전 장관’이 이번에는 전임 장관의 예우를 받으며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꿰찼다는 ‘에스컬레이터’ 인사가 되고 말았다. ‘에스컬레이터’ 인사는 고위직을 지난 인사가 또다시 알짜배기 산하기관의 장을 맡아 수직 계열로 돼 있는 공무원 조직의 근간을 뒤흔들며 틈새를 노려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사를 지칭한다. 복지부 내에서 에스컬레이터 인사가 한번 실행되면 고위 관료직인 국장급 인사가 중대한 과오로 좌천된 후 4개월이 채 못돼 알짜배기 보직의 하위급인 과장급 보직 자리를 신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아가 정부 부처의 모든 장관들은 장관을 그만둔 후 4개월만 되면 산하기관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게 되고, 국가 공무원조직과 정부부처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임면권자의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과 선택으로, 새해에는 작년과는 다르게 불통·갈등·빈부격차 없는 살맛나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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