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나영
지난 3월 한국여자의사회 월례회에서 제39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후보자 합동 토론회(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사회를 맡은 필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요즘 의료계가 많이 어렵습니다. 다른 여러 집단으로부터 고립된 모양새인데요, 그 기저에는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의사집단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된 가장 핵심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견해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해서 다섯 분의 후보자가 다양한 답변을 내 놓았지만 가장 그럴듯한 답변으로 들린 것은 이후 39대 의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추무진 회장의 답변이었다. 요지는 의사들이 개원가, 준종합병원, 종합병원, 대학교수, 인턴, 전공의, 공보의, 전임의 등 다양한 군에 분포되어 있어 의견을 통합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에서의 여러 도전에 대한 대응책에서 드러난 정황으로 보아 의사들이 단결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고, 또한 사회에서도 기대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아 씁쓸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최근 수원주보에서 읽은 글이 매우 신선했다. 의사들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폐가 있고, 우리가 갑작스러운 강도를 만난 것도 아니지만, 입장이 다른 의사들이 단결해야 하는 것을 절실히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었다.

조해일의 ‘심리학자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그 책을 구하러 곧바로 교보문고를 갔으나 종교서적인지 찾기 어려워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주보내용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

“조해일의 ‘심리학자들’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겨울 지방 소도시 시내버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버스가 한창 시골길을 달릴 때 갑자기 세 남자가 일어나 한 남자는 버스 기사에게로, 다른 두 남자는 밍크코트를 입은 어떤 여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여자의 핸드백을 빼앗으려 했고, 여자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약해 보이는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멈추시오. 대낮에 이 무슨 짓이오. 어서 그 여자를 놔주고 내리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세 남자는 비웃으며, 그 남자에게 다가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마구 때렸습니다. 그 청년은 맞으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이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수적으로 이 사람들보다 우세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의 공포심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꼴을 보고도 나 몰라라 한다면 사람이 아닙니다.”이 말이 버스에 탄 사람들의 양심을 깨웠고, 분노에 찬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강도들이 오히려 겁에 질리게 되었습니다. 운전기사는 버스를 몰아 가까운 파출소에 세웠고 그들은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 지난 3월 한국여자의사회 월례회에서 열린 제39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후보자 합동 토론회 장면.

반면 다양함은 단순함을 이긴다는 말도 있다.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물 종은 사람이 아니라 세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환경변화에 적응을 아주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나 세균 개체군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텔아비브대학의 벤 야콥과 시카고대학의 샤피로라는 두 생물물리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즉 이러한 적응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연한 돌연변이 때문이 아니라 세균 개체군의 특별한 사회구조 때문인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세균들은 모두 개성이 달랐으며, 그로 인해 개체군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달랐다.

두 학자는 이런 세균들을 다양한 성격 유형들로 분류해냈다. △일치를 강화시키는 자들(화학적인 연대감을 불러)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자들(환경의 다양한 화학적 신호들에 더 빨리 반응하고 먹이를 더 잘 이용) △선구자들(개체군에 먹이가 빠듯해지면 ‘일치하라’는 압력으로부터 해방된 후,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나서는데 좋은 먹이를 만난 세균들은 화학적 유혹물질로 자신들의 성공을 개체군에게 보고) △자원을 열어주는 자들(좋은 먹이를 찾은 자들이 개체군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는)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러한 세균들의 학습과 생존법칙은 이외에도 ‘접합’과 같은 또 다른 기전으로 보완되는데 접합은 ‘온라인’으로 유전적인 ‘성공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이웃과 도킹하는 세균의 능력이다. 이런 교환을 통해 세균들은 서로간의 화학적 정보를 전달하며, 이 정보들은 유독물질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단순함이 아니라 다양성이 사회 시스템의 생존을 보장하고, 학습에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즉 단결을 위해서 모두 한 가지 역할을 해서는 안되고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직종의 의사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의 여러 유형의 의사들은 서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끈끈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조정역할을 위해서 대한의사협회나 한국여자의사회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 인식을 잘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홍보와 대화가 필요한데 너무 성실하고 바쁜 의사들의 일상생활에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는 것이 큰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모르는 것처럼 생각되는 의료계 사안을 날카롭게 감지하고 파악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의사 사회에 나름대로 그만큼 다양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을 상호 이해의 씨앗으로 하여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하모니를 향해 나가는 과제는 결국 두 단체를 비롯한 여러 의사단체의 창의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