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
물고기 몇 마리를 작은 어항에 넣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손가락 길이(5~8cm)밖에 자라지 않았다. 같은 종류의 물고기를 등산길 연못에 놓아주었더니 15~25cm까지 성장했다. 그 물고기를 강물에 방류하면 1.2m의 엄청난 크기까지 자란다고 한다.

관상어중 ‘코이’라 불리는 잉어의 얘기다. 같은 물고기인데도 어항에서 기르면 피래미가 되고, 강물에 놓아기르면 대어가 되는 것을 빗대 ‘코이의 법칙’이라 부른다.

환경에 따라 미래가 바뀌고, 어떤 목표를 바라보고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예화를 직전 몸담았던 제약사에서 접했을 때의 울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벌써, 2015년이 저물고 있다. 저마다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 계획을 고민하느라 분주하다. 걸어온 길을 엄정하게 평가하고 제대로 복기하느냐 여부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첫 단추다. 더더구나 우리 국민의 건강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와도 직결되는 산업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미래지향적으로 따져 볼 일이다. 2015년은 한국 제약산업이 가능성의 재평가를 받은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정부와 언론, 국민이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비로소 인정하고 미래 국가경제를 살릴 구원투수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 올해가 아닐까싶다. 물론 연이어 대박을 터트린 한미약품의 대형 기술 수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러 측면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올 한 해동안 한미약품과 녹십자, 동아ST와 CJ헬스케어 등 여러 제약사들이 7개 과제에 모두 7조6천억원대에 달하는 신약개발기술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도출한 것이다. 또 연간 1~2개에 그치던 국내개발 신약이 올해는 역대 최다인 5개가 탄생하며 지속적인 R&D 투자의 결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세계 29개 국가에 진출했거나 판매 예정인 국산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보령제약)가 올해 멕시코 현지 순환기내과의 처방률 1위 치료제에 오르기도 했다.

연간 매출액 1조원대 제약기업이 지난해 1개에서 올해는 3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질적으로나 외형적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 성장여력은 한층 두터워지고 있다.

올해는 1945년 해방 직후 ‘제약산업의 불모지에서 국민 건강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제약인들의 열정과 기업가 정신을 엮어내고자 출범한 한국제약협회가 창립 70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숱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업(業)에 대한 자긍심으로 헌신한 ‘제약보국’의 외길 고집이 비로소 한국 제약산업의 가치와 경쟁력에 대한 국내외의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협회 창립 70주년의 의미가 한층 뜻깊다고 하겠다.

제약산업이 21세기 경제성장을 주도할 생명공학 분야의 대표산업이자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이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부 차원의 육성·발전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약산업의 글로벌 시장규모가 스마트폰·반도체 시장보다 더 큰 1200조원에 달하며, 제약산업이 기초과학과 의학을 비롯한 타 산업분야와의 결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진데 따른 것이다. 물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의 적극적인 발현,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단호한 근절 노력 등 제약기업들에 대한 엄정한 주문도 업계는 잘 알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는 새해에도 R&D(연구개발) 투자 증대를 통한 신약 개발과 글로벌 진출, 윤리경영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요구이자 생존의 길이라는 점은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제약산업이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국부 창출에 기여하며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연구계간의 이해와 협력은 반드시 선행돼야할 전제다.

국내 제약산업이 앞으로 글로벌 무대가 인정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창조경제의 성공신화를 연이어 써내려가려면 무엇보다 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가 절실하다. 산업 증진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신약 개발과 해외 진출 등 국부 창출에 보탬이 되는 보험의약품 약가정책 등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실거래가 조사 약가 인하와 더불어 현재 실시중인 사용량 증대시 약가 인하, 사용범위 확대시 약가인하 등등 중복적으로 이뤄지는 기형적 약가 인하 정책들의 통합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약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 금액을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약가제도 수립, 국가 차원의 R&D 지원자금 확대와 세제감면제도 지속 유지 등도 같은 맥락에서 수용돼야 할 과제다.

아무리 제약산업이 다양한 규제를 받아야하는 대표적 규제산업이라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기업가 정신이 설 자리는 없다.

구호가 아닌, 성과와 미래 먹거리로 이어지는 창조경제의 현실화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창조행정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로는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의 실현을 위해 큰 바다에 나가 도전하고 부딪히라 하면서, 정작 행동은 유지관리 비용을 이유로 그나마 숨쉬던 수족관과 어항의 크기를 습관처럼 줄이고 줄이는 식이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글로벌 진출과 국부 창출을 향한 대어의 꿈을 응원하는 창조행정, 그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되는 2016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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