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약 4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수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건강보험 재정적자 위기가 초래된 계기는 2000년 8월 시행된 의약분업에 따른 재정 파탄이다. 의약분업은 의사가 진료와 처방전 발급을 맡고,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역할 분담 제도다. 약물 오․남용을 줄이고 의료서비스를 정확히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료수가를 인상해주면서 2001년에만 4조원의 건보 적자가 발생했다. 그 해 사회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파탄 위기에 몰린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는 일이었다. 당장 5월(직장)과 7월(지역)부터 적자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의료 체계가 크게 흔들리자, 그 해 3월 21일 김대중 전(前)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민주당 김원길 의원을 전격 기용한다.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으로 건강보험 재정적자 해결의 선봉장 역할을 기대한 조치였다.

필자 역시 김원길 전 복지부장관(이하 ‘K 전 장관’)에 대해 기대치가 컸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전선 부사장과 대한종합건설 사장 등을 역임하고 14대 국회에 입성한 3선 의원으로 당 정책위의장을 무리 없이 역임했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한 경제통이라는 점과 그의 추진력 및 정치력으로 건강보험 위기를 잘 극복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해결사로 나선 ‘K 전 장관’은 주말을 이용해 복지부 업무현황을 보고 받고, 건보 재정적자가 6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일부 지적에 따라 복지부에 재정 추계를 다시 하도록 지시했다. 그해 3월 28일 국회 보건복지위는 ‘K 전 장관’을 전체회의에 출석시킨 가운데 건보 재정안정 대책을 보고 받고 재정위기 타개책을 논의했다. 여야의원들은 K 전 장관이 동료의원인 점을 감안해 “경제통으로서 국민의 큰 관심사인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질책보다는 격려를 주로 한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K 전 장관은 2001년 5월 31일 ‘2003년까지 당기 수지균형을 이루고 2006년까지 5년 내에 재정적자를 해소해 건전 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 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이날 탄생된 법이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하 특별법)이다. 정부 예산에서 40%, 건강증진기금에서 10%를 각각 지원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는 5년 시한의 일몰법으로 담배부담금을 현행 2원에서 150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담은 특별법으로 2002년 1월 국회를 통과했다. K 전 장관은 새정치국민회의가 의약분업 실시 등을 뼈대로 하는 ‘보건의료 개혁정책 보고서’를 만들어 당정의 분업추진 시동을 걸 1998년 당시 정책위 의장이었기에 ‘결자해지(結者解之)’ 심정으로 건보 재정안정 대책을 마련했다는 후문이 있다. 물론 이 특별법은 2006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됐지만, 이후로도 국고 지원은 계속됐다. 2007~2011년에는 건보료 예상 수입의 20%(정부 예산 14%+건강증진기금 6%)를 보전해주는 내용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반영했고, 2012년부터 5년 기한으로 연장됐다. 가입자들의 저항이 심한 건강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도 계속 확대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건보료 인상률은 2011년 5.9%를 기록했을 뿐 최근 3년간(2013~2015) 1%대로 억제하고 있다. 건강보험적용 부문은 점차 확대돼 2007년 4773억원이던 보장성 규모가 2014년엔 1조4450억원까지 커졌다.

국고 지원이 규정된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시효가 내년 12월 31일까지라서 1년여 남은 ‘시한부’ 신세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사이의 입장 차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기재부는 국고 지원 규정을 더 이상 연장하기보다는 2017년부터는 일반회계처럼 해마다 치밀한 예산심사를 거친 뒤 지원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입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현행 구조를 바꿔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하며, 국가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등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점점 나빠지는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희귀 난치질환자․장애인 등 의료 취약층을 뒷받침하려면 안정적인 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향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므로 정부가 섣부르게 발을 빼는 것은 위험하다는 논리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정부 지원 수준을 최소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 시점에서 15년 전 건보재정 위기상황을 돌이켜 보면, K 전 장관의 재정 안정대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재정 파탄으로 인해 중증질환이나 상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안가고 참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을 것이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심각한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건보재정이 악화되면 병․의원들이 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하거나 비급여 진료에 치우칠 우려가 있고, 새 항암제나 수술법이 나와도 건강보험에서 제외시키는 등 국민의료서비스가 악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필자는 당시 건보재정 적자를 극복케 한 일등공신은 혜안과 강력한 결단력을 가진 ‘K 전 장관’이라 단언한다. 환경변화에 따라 건보 재정운영에 안팎으로 난관이 있을 때, 위정자들은 2001년 건보재정 적자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이 우리나라 인구의 10%에 이르지만 여기에 지출되는 진료비는 건강보험 지출액의 40%(작년말 36.7%)에 육박하는 만큼 앞으로 가속화되는 노령화를 대비해 건보제도 자체의 대폭적인 개혁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지 못하면 향후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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