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공무원 사이에는 ‘공·비·총’이란 말이 있다. ‘공보관·비서실장·총무과장’을 일컫는 말이다. 장관을 수시로 만날 수 있고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거치는 사람은 대부분 승진이 보장된다. 바로 윗자리로 승진하거나, 해외 주재관으로 나가는 게 관행이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고생한 것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서 이런 관행에 문제를 삼는 공무원들은 드물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기자로서 터득한 게 한 가지 있다. 중앙부처 조직을 움직이려면 이 세 가지 직위 즉 ‘공·비·총’ 공직자와 가능한 친밀하게 교분을 쌓고 정보를 남보다 빨리 입수해서 사실을 사실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때 기자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직위에 있는 ‘공·비·총’은 장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셔야 하는 공직자이므로 기자들을 의식적으로 멀리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그래도 기자라면 이들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호형호제’ 할 정도로 부담 없는 사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공보관’이라는 직책을 요즘 젊은 기자들 사이에 무심코 얘기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대변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음표를 제시한다. 그러면 필자는 후배 기자에게 ‘공보관(公報官)'은 ‘정부의 시책과 그 업적의 홍보, 선전 및 그 밖의 공보 사무를 맡아 장관을 보좌하는 직책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을 일컬으며, 대변인(代辯人)은 ‘어떤 사람 또는 단체를 대신하거나 대표해 의견이나 입장을 밝혀 말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알려준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중앙부처에 있는 ‘대변인’ 직위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말까지도 부연 설명해준다. 후배 기자가 “아 그렇군요. 대변인이라면 그 조직의 모든 업무를 꿰차고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데, 부처 대변인은 기자와 가교 역할만을 하는 앵무새인 셈이군요.”

물론 공보관이라는 직위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4월부터 ‘홍보관리관’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공보관은 기자들에게 꽤나 친숙한 사이였다. 참여정부는 공직자와 언론의 폐해가 공보관과 기자들 사이에서 확대 재생산돼 사실이 왜곡 전달된다고 여기고 정부 직제에 손질을 가해 공보관을 혁파한다. 공보관은 홍보관리관을 거쳐 급기야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2월 29일 ‘대변인’으로 개칭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비서실장은 장관의 일정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기에, 비서실을 통해야 장관 일거수일투족을 남보다 빨리 알 수 있다. 장관의 수행비서는 말할 것 없고 장관실 여비서, 수행 운전기사와도 친분을 쌓아야 한다. 얼핏 중요한 보직이 아니라 간과하기 쉽지만, 이들이 민감한 정보를 의외로 많이 알고 있다. 실제로 결정적인 첩보는 운전기사나 비서들의 입에서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점을 정치(精緻)할 수 있는 남다른 기질이 있었다.

또 부처 총무과장은 어떤 직위였던가. 지금에는 인사과장으로 불리고 있지만, 예전의 총무과장은 부처 인사의 밑그림을 그려서 장·차관에게 결재를 거쳐 통과되면 그(원안)대로 인사가 시행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일이다. 그 때는 필자가 ‘인사 전망 기사’로 꽤나 명성을 날리던 때였다. 장관이 인사를 단행하기 전에 지인들로부터 여러 경로를 거쳐 약 보름 전에 인사 전망(가칭 ‘하마평’) 기사를 탈고하기도 했다. 복지부 K총무과장은 “그게 사실이 아닌데 왜 추측 기사를 남발하느냐”며 항의를 거세게 했다. 하지만 정작 보름이 지나 장관이 인사를 단행하니 필자가 쓴 기사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니 그 때 K총무과장 입장에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례가 10여 차례 반복되면서 필자 때문에 보건복지부 관가에서는 공식으로 단행되지 않은 ‘내정’ 인사가 횡행하곤 했지만, 그 때 총무과장을 역임한 K씨는 결과적으로 차관급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 이후 공직자들 사이에서 필자를 타칭 인사총무국장으로 통하면서, 복지부 인사철만 되면 필자에게 “인사 밑그림 좀 설명해 주시죠.” 라고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에는 연공서열 문화가 통했고, 한 부처에 오래 몸담고 공직인맥을 파헤치면 인사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행정고시와 일반 승진을 배열하고 출신지와 대학, 고등학교 등을 구분해 가면서 기사를 작성하던 때가 문득 그립다. 요즈음 인사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니 베일에 쌓여 있어 부처 국·과장 인사를 장관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광경을 낙하산 인사라고 해야 하는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장관이 모르는 부처 인사가 단행된다면 수장으로서 무슨 위신이 서겠는가.

보건복지부는 정부수립 후 사회부와 보건부로 출발해 1955년 두 부처가 합쳐져 보건사회부가 됐다. 다시 ‘보사부’는 노동부(’81년)와 환경부(’94년)가 차례로 독립하면서 보건·복지분야만 남게 됐다. 1998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98년)이 독립 청으로 승격, 그야말로 보건·(사회)복지 업무만 남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식약청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국무총리실 휘하로 옮겨졌다. ‘복지사회’를 열어갈 주역들인 실·국장과 과장들은 대부분 보건복지 분야에서 잔뼈가 굶은 ‘복지부맨’들이다. 때문에 조직의 인화가 강하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또 다른 부처에 비해 외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재 차관은 기획재정부 출신, 국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다. 한 부처에 오래 몸담고 공직인맥을 파헤치면서 인사 흐름을 가늠할 수 있던 그 시절, ‘공·비·총’ 공직자와 친하게 교분을 쌓아가면서 밤새도록 담소를 나누던 그 때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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