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세태가 나라의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에 무려 100조원을 투입했는데도 출산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20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노인층만 잔뜩 불어나고 일하는 생산인구는 줄어든다니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생산과 복지 등 나라의 경영이 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미래사회의 재앙을 경고한다. 인구의 감소는 시장을 축소시키고 생산성을 하락시킨다. 낮은 성장률은 해외자본의 유입이 어려운 사회를 만들고, 이것이 다시 성장률 저하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국가경쟁력은 날로 떨어진다. 생산인구의 노인부양부담의 증가는 기존의 연금제도를 무너뜨리고 나라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평균출산율이 1.21%로 OECD(경제협력기구) 국가 중 가장 낮다. 급속도로 일본의 인구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올 8월 31일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약 5147만 명.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보면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2030년부터 전체 인구의 감소가 시작된다. 옥스퍼드 인구문제 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305년에는 한국의 인구가 5만 명으로 감소해 지구상에서 사라질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한참 됐다. 한국은 1983년에 인구 유지 기준점인 합계출산율 2.1 이하로 떨어졌는데 2006년에야 처음 저출산 대책이 나왔다. 필자는 지난 2009년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출산 장려냐, 이민 수용이냐를 선택할 시점이 곧 온다”며 “아이 낳는 것보다 더 큰 애국은 없다”고 발언하던 사실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해 참여정부 때 대통령 직속기구로 사회통합기획단을 설치하고 인구고령화사회팀이 다양한 방안들을 수립, 제시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는 ‘저출산 고령화사회기본법’이 제정돼 대통령 직속기구로 위원회가 발족했으니 저출산 고령화대책이란 바로 대통령의 사업 영역으로 격상된 것이다. 그 뒤 이명박 정부시절 위원회가 보건복지부장관 직속으로 강등돼 이관됐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대통령 직속기구로 환원됐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저출산 고령화대책의 중요성과 시급성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올해 안으로 발표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 시안’에서는 만혼과 비혼 문제가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라 보고 청년들의 결혼 장애요인인 주거 부담, 고용,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부 목표는 일단 지난해 기준 1.2명 수준인 합계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1·2차 계획과 달리 ‘선택과 집중’ ‘사회구조적 대응’을 하겠다면서 이번 3차 계획에서는 그간 낮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비혼과 만혼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언뜻 보면 정부의 이번 시안은 그간 출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단지 보육이나 신혼부부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며 교육 문제나 청년 고용, 주거 등 구조적인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온 학계와 시민사회의 지적을 수용한 양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안에 대한 여론은 ‘상식 속에 함정’이 내재해 있으며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정부 정책을 들여다보면 논란의 소지가 큰 내용이 많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지원이나 임대주택 입주 등 주거지원 확대, 보육체계 개편과 육아휴직기간 확대,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지원 확대, 청년일자리 창출 등 진부하거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내용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단체미팅을 주선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지자체들이 써먹을 만큼 써먹은 것이니 참신하지도 않은데다 정부 정책으로는 충분히 엽기적이다. 특히, 청년들의 취직이 점점 늦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초등교육 개시 연령을 앞당기겠다는 발표는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 인식의 한심함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을 뿐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이번 시안은 사회구조적 요인들을 언급하면서 더 포괄적이고 나름 획기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이전의 계획안들에 비해 훨씬 부정적인 반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안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우리 사회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추세’에 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 가운데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계획안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고 있다. 애초에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한국사회가 지금 여러 면에서 살 만하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러므로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한국 사회 자체가 지금보다 다방면에서 훨씬 살 만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사실 획기적인 것을 넘어서 엽기적인 대책을 가져와도 당장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둘째,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저출산 대책은 ‘생애주기의 국정화 시도’에 가깝다. 저출산 현상을 가져온 여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나 변화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에서 국가가 제시하는 삶은 이러하다. 일찍 학교 들어가서 얼른 졸업해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빨리 취직해라, 그리고 국가가 주선해주는 맞선을 통해 배필을 만나 반드시 결혼하고 가능한 한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기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출산·고령화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현실적인 변화에 대처하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흔히 경제에서 고도성장의 시대가 가고 저성장 시대가 됐다고 하는데, 인구에서도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됐음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저출산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사회의 큰 개혁과제와 만나게 된다. 고용과 산업의 문제, 돌봄과 복지의 문제, 그리고 의료와 교육 영역에서 어떻게 시장의 힘을 제어하고 공공성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 생태계 문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정치공동체를 꿈꿀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정하는 획일화된 생애주기에 따라서 출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들을 잘 풀어나간다면 결국 자연스레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과연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그리고 그 효과가 얼마나 높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규정된다.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영역이 아닌가? 물론 출산욕구가 있는 가족이 사회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에 대한 정책적 정당성은 확보된다. 보육과 양육지원정책이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출산행위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정책입안에 있어, 사회현상에 대해 조금 더 넓고 깊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사고해 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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