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흡연은 질병’이라며 텔레비전을 통해 광고까지 하면서 이런 질병에 대해서는 건강보험급여 백지화를 선언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약제 오·남용, 금연성공인센티브 지급 곤란으로 건강보험급여 보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11일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이 담뱃세 인상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장관 등이 참석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었지만 총대를 복지부장관이 멨다. 담뱃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보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담뱃세 인상 후 9개월 만에, ‘담뱃세를 올리면 흡연율이 줄어 국민이 건강해 질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무색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담배 소비가 다시 늘어나는 이유를 담뱃세 인상액에서 찾는다. 담뱃세를 2000원 올렸지만 여전히 담배를 사기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담뱃세 인상 논의가 있을 당시 가격 인상으로 금연을 유도하려면 담뱃세를 6000원 정도를 올려 담뱃값을 8000원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은 2000원이었다. 일각에서는 2000원을 올리면 금연하는 사람이 크게 줄지 않아 세금 징수액이 최대치가 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를 참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정부 예측은 금연 효과에서는 틀렸지만 세금 징수에서는 정확했다. 2014년 6조7425억 원이었던 담배 세수가 내년에는 12조6084억원으로 5조8659억원 늘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담뱃세 인상은 ‘거위 깃털(세금) 뽑기’에 비유된다. 정부는 거위가 놀라 날뛰지 않은 수준만큼 담뱃세를 올렸고, 흡연자들은 아픔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깃털을 뽑히고 있다. 더구나 담배 관련 세금은 천문학적으로 늘었지만, 정부의 내년도 금연지원사업 예산은 올해(1475억원)보다 10% 이상 되레 줄었다. 정부가 범정부금연종합대책을 통해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밖에 금연진료에 대한 건강보험급여를 비롯해 소매점에서의 담배광고 금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담뱃값은 인상됐고, 올 초 상당히 큰 폭으로 떨어지던 흡연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 6일 금연치료에 대한 부담 경감 관련 자료를 발표하면서, 금연치료(진료)에 대한 급여는 보류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올해 4월 2일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등’을 입법 예고하면서 금연치료 급여를 약속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향이다. 현재 담배소비량은 가격 인상 직후 연초에만 반짝 감소 세였다가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올해 6월 3억1000만갑과 7월 3억5000만갑이 판매됐다. 담뱃값 인상 이전이었던 지난해 6월 3억6000만갑과 7월 3억5000만갑과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어진 상황이다.

지난 9월 16일 기획재정부는 ‘2016년도 부담금운용종합계획서’를 통해 내년도 담배예상 판매량을 34억6000만갑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예상한 올해 판매량은 28억8000만 갑이었으니 약 6억갑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본 것이다. 담뱃값을 2000원이나 인상하고도 이렇게 담배소비량이 원상태로 복귀하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범정부 금연비상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현재 정부가 하는 일들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정부가 이 위기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법은 통과됐지만 1년 반 유예기간을 둬 내년 12월이 돼야 볼 수 있는 형편이고, 소매점에서의 담배광고 금지는 책임을 맡은 기획재정부가 진행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민건강을 위해 금연에 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복지부가 금연치료에 대한 건강보험급여조차 보류하겠다니,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통한 세수 확보 문제 말고 흡연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금연치료에 대한 급여를 백지화하는 이유로 약제 오·남용 가능성과 성공인센티브 지급의 어려움 등을 들었는데, 왜 금연치료제만 약제 오·남용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더구나 금연성공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은 부수적인 일인데 이를 근거로 백지화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금연지원 프로그램은 너무나 불편해 의료기관의 외면을 받고 있는데 그러한 불편한 제도를 왜 지속하려하는지 국민들과 의료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현행 금연지원 프로그램은 금연을 원하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면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환자 등록을 하고 약 처방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너무나 불편해 의사들이 기피하고 있다. 현재 금연치료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올 8월 기준으로 전체 6만3777개 중 1만9924개로 32.1%에 불과하다. 또한 금연치료 의료기관을 통해 금연 지원받는 흡연자가 월평균 3월 2.0명, 4월 1.4명에서 8월에는 0.8명 수준까지 감소함으로써 의료기관이나 흡연자 모두 급감하고 있다. 흡연자들은 니코틴중독이라 혼자 금연을 하기는 쉽지 않아서 금연치료제를 필요로 한다. 세계질병분류기호(ICD)에서도 흡연은 ‘담배로 인한 정신적 행동적 장애’라는 질병으로 분류돼 흡연은 더 이상 취미나 습관이 아니라 ‘니코틴 중독’이라는 질병으로 규정된 지 오래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미국, 일본, 영국, 스페인, 캐나다 등)은 금연치료에 의료보험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복지부는 텔레비전을 통한 금연광고에서 흡연은 질병이라고 광고하면서 정작 금연치료에 대해선 건강보험급여를 백지화를 선언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흡연자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속히 지난해 발표했던 범정부 금연대책을 이행해야 한다. 소매점에서 담배광고를 금지하고, 금연치료에 대한 건강보험급여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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