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최근 다이어트약을 복용한 환자가 약물을 복용한 후, 급성 폐쇄각 녹내장이 발생해 치료를 받게 되었고, 사전에 의사에게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책임을 물어 손해 배상을 요구한 일이 발생했다.

해당 의사는 약물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약사에게 있고, 환자 특이체질에 의한 부작용으로 보인다며 손해배상을 거부했고, 환자는 소비자원에 고발했다. 결국 소비자원은 분쟁조정에 나섰고, 의사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50만원 지급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 사실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약사법 제24조 제4항에 따르면, 약사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복약지도를 하도록 돼 있어 의약품의 부작용 등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는 약사에게 부과돼 있는 반면, 의사에게는 별도의 복약지도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기에 의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반발했다.

이러한 의협의 주장에 대해 소비자원은 “판례에 의하면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사, 처방, 투약 등의 치료행위를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대법원과 서울고법 판결을 인용해 “(법원은) 치료를 위한 의약품 투여도 신체에 대한 침습에 포함되기 때문에 투약행위, 의사의 처방행위도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함으로써 의사에게 약의 처방과 투약 시 설명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고 덧붙이며 의협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왜 이런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것이고,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할까? 굳이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의 ‘자기만의 용어, 자기만의 정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협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조제행위(복약지도)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소비자원은 의료행위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다. 현재 식약청에서 비만 치료로 공식 승인(on-Label)된 것은, 식욕억제제로 쓰이는 펜터민과 펜디메트라진, 디에치닐프로피온과 지방흡수저해제로 쓰이는 오를리스타트(제니칼)와 최근에 포만감 증가제로 알긴산과 카복시메칠셀룰로즈 소디움 복합제(알룬, 에이올) 뿐이다. 재작년에 시부트라민(리덕틸)은 부작용 문제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문제는 온라벨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오프라벨(off-Label) 제품들이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구용약 중에는 항우울제로 쓰이는 플루옥세틴, 감기의 제 증상에 쓰이는 에페드린 카페인 아세트아미노펜 복합제와 간질 치료제로 쓰이는 토피라메이트, 방풍통성산건조엑스 방기황기탕건조엑스와 같은 한방제제, 콩기름 불검화물, 홍화유, L-carnitin, 녹차성분, 마그네슘 하이드록사이드나 비사코딜 성분의 변비 치료제가 쓰이고 있는데 보통 이들을 3~5가지 조합해 처방하고 있다. 이들 오프라벨 제품들 때문에 복약지도하다 보면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처방약을 검색해 왜 항우울제나 감기약이 들어가 있느냐, 왜 간질약이 들어가 있느냐고 경악하며 묻는 환자들에게 오프라벨에 대한 설명을 하며 이해를 도와도 납득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묻지도 않는 부작용을 일일이 환자들에게 복약지도 한다고 설명을 한다면 과연 약을 복용할 환자는 몇 명이나 될 것이며 처방한 의사는 가만히 있겠는가?

지난달 약사회 게시판에는 한 약사가 올린 글이 논란이 되었다.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처방약을 너무 오래 먹지 말라’고 환자에게 복약지도 했는데, 인근의 처방전 발행 의사가 전화를 해, “왜 환자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 환자가 약에 대해 물어보면 의사에게 물어보도록 하라”고 말하곤 잘못에 대해 사과하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현행 대한민국 의약분업 제도 하에서 절대 ‘갑’인 의사의 행위에 대해,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는 약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건 뭐 죄수의 딜레마도 아니고, 부작용을 고지하면 의사의 ‘갑’질에 당하고, 부작용을 고지 안하면 약사법 24조 4항에 위반돼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약사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가히 약사의 딜레마이다.

약사는 조제 후 복약지도 시 부작용(side effect) 중 주로 약물의 포지티브 effect 위주로 설명해줄 수밖에 없다. 감기약에 들어가 있는 에페드린은 식욕억제와 에너지를 태워 열 발생을 촉진 시키고, 카페인과 함께 복용할 경우 에너지 소모가 촉진된다. 간질 치료제인 토피라메이트의 경우에는 미국 의료 현장에서 살 빼는 효과가 입증돼 미국 FDA로부터 살 빼는 효과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는 정도로 말이다. 물론 환자가 자신이 녹내장 환자임을 밝히면서 약을 복용해도 되는지를 물어온다면 왜 안 되는지를 상세히 복약지도 해줘야 마땅하지만.

부작용 중 네거티브한 점은 처방한 의사가 말해주는 것이 타당하다. 치료에 대한 처방권은 의사에게 있다. 권한이 있는 것에는 의무도 따른다. 굳이 판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의사의 처방행위는 의료행위이고, 이러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설명의무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오프라벨 의약품을 선택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울러 오프라벨이 포함된 처방전을 수정하거나 거부할 권한이 약사에게는 없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 하에서 의약품의 효능 효과 등 처방전의 포지티브한 점을 복약지도하지, 환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절대 갑인 의사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면서까지 네거티브한 부작용을 일일이 복약지도 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약화사고의 책임은 원인에 따라 처방오류는 의사에게, 조제오류는 약사에게, 품질불량의 경우는 제조업체가 지게 된다는 복지부 기본 입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단 불가항력적인 약화사고의 경우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를 활용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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