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올해 국감은 추석을 기점으로 두 차례 나눠 실시되는데 전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1차 국감이 23일 종료됐다. 여야는 이번 19대 마지막 국감을 민생국감으로 만들겠다고 한 목소리로 다짐하며 야심차게 돌입했으나, 올해 국감은 여야가 내년 4월 총선을 7개월 앞두고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면서 민생은 뒷전이 된 모양새다. 민생국감이라는 새누리당의 구호도, 4생(生)국감을 만들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다짐도 공허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안팎으로 나오는 평가는 냉담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평가다. 호통과 정쟁, 삿대질, 눈길 끌기용 ‘한 방’ 질문 등 볼썽사나운 행태가 반복됐다.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은 국감이 17대 이전으로 되돌아갔다는 혹평까지 내놨다.

필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 현장을 20여 년 동안 목도해왔다. 지난 15~16대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을 지낸 소설가 출신의 김홍신 의원은 여당인 한나라당 출신이면서도 국감장에서 만큼은 피감기관의 수장을 야당 출신 의원보다도 공정하고도 냉혹하게 다루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재임 시 임기 후 시민단체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에 연 이어 월등한 차이로 1위를 했었다. 그는 특히, 차떼기당으로 얼룩진 한나라당의 부패한 의원들과는 달리 올바른 의정생활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늘 왕따(?)를 당한 정의로운 의원이었다. 또 법조인 출신으로 제15대 의원을 지낸 이성재 전 의원은 지난 1996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장애인복지에 뜻을 두고 현장에서 리더로서 무에서 유를 창출해낸 개척자 그룹이다. 그는 국감장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장애인복지의 판도를 바꾼 장애인연금법이나 활동지원법 등에 대한 입법 활동을 해 왔던 인물이다.

국감 현장을 지켜보면 가장 역겹게 들리는 것이 “존경하는 000의원님”이란 말이다. 자다가도 헛웃음이 절로 나올 일이다. 의원이 앵무새도 아닌데 그 말은 거의 빼놓지 않는다. 그렇게 해 놓고는 정치적 이해가 다르면 상대를 향해 삿대질하고, 윽박지르고, 심지어 욕설까지 퍼붓는다. 이제 속보이고 입에 발린 그런 말을 의원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경은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고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아야지 자기들끼리 존경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은 난센스다. 피감기관에 질문을 할 때마다 자신의 지역구와 이름을 빼놓지 않는데 이것도 귀에 거슬린다. “00출신 000의원입니다” 정말 식상하다. 자신이 밝히지 않아도 위원장이 순서가 되면 소개해서 아는데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럴 시간에 현안에 관한 질문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칭찬도 세 번 이상 들으면 화를 낸다는데 같은 의원의 지역구와 이름을 하루에 몇 번 씩 녹음기 틀듯 반복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을까. 다음은 국감장을 비우는 의원이 너무 많다. 지난 17일에는 한 의원이 국감장에서 졸다 카메라에 잡혔다. 어이없는 일이다. 피감기관의 사람이 자리에서 졸았으면 아마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국회를 경시한다”며 호통을 쳤을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이런 의원은 국민을 가볍게 보는 것 아닌가. 피감기관 사람들은 종일 기다리는데 어느 국감장은 의원 서너 명이 앉아 질문하는 일도 있다. 피감기관 공무원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의원들이 자신의 질문만 끝내면 거의 자리를 비운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하고 정부측 답변을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논리에 밀리면 호통치고 삿대질하고 억지 소리하는 일도 없지 않다. 국민이 볼 때는 한심하다.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기본이 안 갖춰진 오만하고 무성의한 태도다. 게다가 일부 의원은 ‘처삼촌 벌초하듯이’ 건성으로 국정감사를 한다. 핵심을 벗어난 질문이 많다. 철저히 준비하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줘야 한다. 준비를 안 했으니 제대로 질문을 할 수가 없다. 국민의 눈으로 보고, 국민의 마음으로 헤아리고, 국민의 입으로 국정을 따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보는 사람은 울화가 치민다. 더 한심한 것은 하나마나한 질문에 더해 은근슬쩍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려는 낯이 두꺼운 국회의원의 행태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지난 21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은 제대로 된 질문․답변 한번 오가지 못하고 끝났다.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의 불출석에는 국회 측 잘못도 있었다. 증인 채택이 4일 전에 이뤄졌는데 국회법에서는 ‘증인 출석 요구는 7일 전에 보내야 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1시간가량 의사진행 발언만 주고받다 정회를 했다. 그리고 6시간 뒤 ‘증인 채택 문제로 국감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결국 회의를 끝냈다. 이런 국감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열 받고 속 터지는 것은 국민이다. 가려운 곳을 긁지 않고 엉뚱한 곳을 건드리면 의원도 욕을 먹어야 한다. 제대로 준비한 의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감은 마치 해장국처럼 국민의 답답한 속을 확 풀어 주는 자리가 돼야 한다. 국민의 가려운 곳, 궁금한 것은 풀어주는 만능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국정감사의 제도상 문제가 있다면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피감기관이 국정감사기간만 잘 넘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시 국감제’를 도입해서 국정감사 중의 발언과 답변에 책임을 지고 사후 실행여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의원들이 철저히 준비해서 현안을 질문해야 피감기관도 긴장하는 법이다. 의원의 질문내용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이다. 요즘 피감기관들이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것은 준비한 질문이 핵심을 찌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둑도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대국하는 법이다. 고수 앞에 꼼수가 통할 리 없다. 의원들 사이에도 자료공유, 중복질의 방지, 정책 대안 제시 등으로 국민의 삶 향상과 정책의 오류를 막는 국감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 속을 터지게 하는 꼴불견 국감 현장 풍경을 더 이상보고 싶지 않다. 진심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내년 4월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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