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수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필자가 처음 의사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상당히 엄격한 진료전달체계가 시행되면서 1차, 2차, 3차 병원간의 환자 이동뿐 아니라, 지역간 환자 이동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진료전달체계는 허울만 남았고, 외래환자를 놓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해가 갈수록 대형병원의 외래 장악력이 높아지고, 의원의 비중이 위축되어 가자 다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문제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이미 한국의 국민들은 입원이나 외래 가릴 것 없이 비용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실손보험의 도입 등으로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면서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 쪽에 어떤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용이치 않아 보이므로 상급병원의 외래 흡입력을 차단하는데 일차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10년의 통계를 보면 상급종합병원 전체의 병상 수 증가는 5천병상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의사 인력 증가는 7천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급종합병원들의 경우 지난 10년동안 병상보다는 의사 수를 늘려서 외래부문에 치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1인당 병상수가 2004년 2.72병상에서 2013년 2.09병상으로 떨어졌는데, 병상 수에 비해 과다하게 많은 의사를 고용하여 외래에 치중하는 상급종합병원의 행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외래부문에서의 금전적 유인을 차단하기 위해 현재 상급종합병원에 지급하는 30% 종별 가산을 외래에 한해 일정비율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래가 돈이 되는 한은 대형병원들이 외래 장악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통계수치상 10년간 의원의 의사 1인당 외래환자수는 -3.3%의 하락을 보였지만, 상급종합병원의 의사 1인당 외래환자수는 무려 25.9%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가 뜻하는 바는 시설을 등에 업은 상급종합병원의 의사는 외래 흡입력이 의원의 의사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말한다. 즉, 대형병원의 경우 의사 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외래환자는 더 많이 늘어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시급히 대형병원의 외래 장악력을 차단하는데 모든 정책을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상급종합병원의 외래부문의 종별 가산율을 하향조정하는 것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상급종합병원의 지정기준에 병상수와 의사수를 연계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병상수보다 과도하게 의사수가 많으면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석달에 한번씩 서울 OO의료원에서 혈압약 타먹고 있어”라고 했던 진도할머니를 재재할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대신에 대형병원의 외래 흡입력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의료가 산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