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균
서울 성북·이정균내과의원장

사랑의 도시 남원.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각광 받는 곳이 광한루와 오작교다. 그런데 광한루 못지않게 춘향 몽룡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은 곳이 바로 남원시 어현동 춘향테마파크다. 춘향테마파크 앞을 흐르는 요천변을 따라 200m 가량 걸으면 광한루로 연결되는 승월교를 만난다. 테마파크에서 광한루까지는 약 400m. 가는 길목엔 춘향마당, 흥부마당, 심청마당 등 테마별 돌조각품도 볼 수 있다. 오로지 사람만 건널 수 있는 승월교는 선남선녀에게는 참사랑을, 신혼부부에게는 백년해로를, 부부에게는 돈독한 부부애를 가져다준다는 ‘사랑의 다리’로 통한다.

광한루 오작교 역시 ‘사랑의 다리’라는 명성을 자랑한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도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진다는 말이 전해져오고 있다. 광한루원(廣寒樓苑 명승 제33호)엔 하늘나라 월궁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루원 광한루를 중심으로 삼신산(영주, 봉래, 방장), 은하호수, 오작교가 있다. 춘향사당, 월매집, 춘향관이 있어 춘향·몽룡의 사랑 이야기는 관광의 맛을 더한다.

광한루와 오작교의 우주관(cosmology). 하늘나라의 견우와 직녀. 남원 고을의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은 천상과 지상의 러브콜을 서로 부르고 있다. 오늘 ‘근대한국’이 오히려 사랑상실시대를 이루고 있는 탓에 우리 역사전통의 대우주 궁전의 대하 로망을 방치해두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선 광한루, 넓기만 하고 춥기만 한 누각이란 뜻인가. 남원 광한루가 어떠한 곳이냐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의문을 품는 대답이 나올지 모른다. 성춘향과 이몽룡은 어찌하여 따뜻한 방이 아니라 넓고(廣) 추운(寒) 누각에서 러브스토리가 이루어지게 되었을까를 의아해하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광한루는 그런 의미를 지닌 누각이 전혀 아니었다. 광한루의 ‘광’은 광대무변의 우주공간을 함축시킨 표현이고 ‘한’은 맑고 차가운 은하수의 신비스러움을 표상한다. 하늘나라에는 백옥경이라는 도시가 있고, 삼청궁이라는 궁궐이 있어 그 속의 광한전에서 하늘님(상제 또는 옥황상제)이 임어하여 우주를 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아시아인들의 우주관이나 우주에 대한 이름은 서사적이라 표현하며, 월세계, 태양계, 은하계의 셋을 삼청궁의 ‘맑은 궁’으로 불렀다.

그리고 광대무변의 운하궁전이란 ‘광한전’은 대우주 인격신의 집이요. 공간이 아닌 장소로 상정되었다. 여러 우주 명칭들은 우주 은하세계에 대하여, 공상적이 아닌 실체적 상상에서 비롯된 우주명칭이라 평가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천문학과 천체 우주관측은 오늘날에도 찬탄을 받고 있다.

▲ 광한루
남원 ‘광한루’는 하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광한전’을 지상에 재현하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에서 그 뜻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전’보다 격을 낮추어 ‘루’라 한 것은 겸양으로 보인다. 따라서 ‘광한루’는 ‘지상’과 ‘천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무한 공간성 건축 축조물이다. 그 누각은 실제로는 폐쇄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의 개방성을 지니며 누원의 전망대 역할을 하도록 지은 누각이다.

조선 초기 황희정승과 정인지가 이 누각과 관련되는 것도 흥미롭다. 황희는 남원·장수 일원의 호족 출신이다. 중앙정계와 갈등을 빚자 고향에 내려와 근거지 마련을 위해 ‘광통루(廣通樓)’를 세웠다. 다음은 조선 초기 신흥 중앙세력이었던 정인지가 남원부사로 부임하면서 남도 땅의 광통로(廣通路)구실을 하던 광통루를 ‘광한루’로 고치게 하였다. ‘광통루’에서 ‘광한루’로 이름이 고쳐지면서 그 공간개념은 확대 재생산되었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 관찰사는 그의 ‘속미인곡’에서 ‘천상백옥경’을 읊은 바 있다. 정철은 천상의 ‘광한전신화체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지상의 3신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이상세계와 견우·직녀 러브로망을 여기에 합류시키는 연못을 조성한다.

섬진강의 상류 요천의 강물을 끌어들여 인공호수를 만들어 삼신산의 섬들을 조성한다. 지리산 산세와 섬진강의 강류가 남원땅에서 절묘하게 결합되어 광한루원의 별유천지 조화세상을 빚어내게 했다. 이 같은 누원(樓苑)의 공간 구성은 신(神)과 선(仙)과 인간(人間)이 하나로 통하는 ‘신선경’을 만들었다.

광대무변의 은하궁전 ‘광한전’과 해동의 유토피아 ‘삼신산’, 고대인의 신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신선도견관’ 광한루원에 견우, 직녀의 사랑도 내려와 ‘춘향전’의 오작교를 건너간다. 월국속 항아에 비견되는 직녀와 견우의 극적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오작교는 천상의 사랑을 지상에서 구현하고 싶은 ‘춘향전’을 낳는다.

천상의 광한전, 지상의 삼신산이 함께 만든 ‘별유천지(別有天地)’남원부의 남문 밖에 놓여 있던 광한루원은 오늘에 2만 2천여평 넓이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지상낙원 3신산 지킴이 자라석물. 아홉 마리의 자라가 떠받들고 있다는 봉래산-방장산-영주산의 3신산을 재현해 놓은 것이 광한루 영지(靈地)인데, 오늘에도 자라가 이를 수호하고 있다. 온갖 재난과 액운을 막아주는 구실을 해왔다는 영물이기도 하다.

남원누원의 문화경관은 독특하고 유별나다. 서울의 창덕궁과 경복궁에도 연못 조경과 누각이 있지만 그런 궁원과는 다르다. 남원 인근에 소쇄원 등 유교 산수의 정자와 연못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양반 원림(園林)과도 다르다. 중국과 일본 등 외국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는데, 한국 특유의 ‘신선도 경관 미학’을 알리고, 탐미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과제다. 중국인들은 연못 규모를 탓하고 일본인들은 연못을 아기자기하게 꾸밀 방법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문 밖에 나가오면 교룡산성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오면 관왕묘도 경치 좋고, 남문밖 나가오면 광한루 좋사온데, 오작교·영주각은 삼남 제일의 승지로소이다”남원에 온지 수삭이 지나도록 글공부만 하던 몽룡에게 방자가 읊조린다.

요천변 광한루는 예나 지금이나 남원의 중심이다. 고려말에는 황감평의 서재였다. 귀양 온 황희가 새로 지었을 때의 이름은 관통루. 500년 묵은 때가 통기둥 속까지 배었다. 이팔청춘 춘향과 이도령이 손깍지를 끼고 다녔음직한 광한루 앞 돌다리 오작교도 처녀 총각들의 발길에 닳고 닳았다.

“춘향아 큰일나부렸다. 그네를 탈 양이면 네 집 뒷 동산도 좋고, 대청대들보도 좋고, 정 은근히 뛰려면 네집 횟대목이나 매고 뛸 것이제, 이렇게 똑 배아진 언덕에서 그냥 발맵씨를 드러내고 속곳은 펄렁, 선웃음 빵긋, 입속은 해뜩 이래놓으니 우리 도련님 애간장 안 녹겄냐”

요천 건너 관광문화단지 옆에는 ‘춘향뎐’ 세트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월매집과 초가 10여 동, 옥사 관광객이 붐빈다. 연못 만들고 세운 월매집도, ‘이리오너라 업고놀자~,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월매와 방자의 질박탄 입씨름도 이 자리에서 찍었다.

남원땅은 어디든 춘향얘기의 무대, 버선밭 옆의 오리정은 두사람의 이별마당, 육모정 구룡계곡 입구에는 춘향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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