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병원 응급실에선 환자가 일단 밖에서 대기는 당연시
기다림은 힘들었지만, 체계적이란 느낌

▲ 김찬주 교수
가톨릭의대 산부인과 교수·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유달리 무더웠던 2015년 여름도 입추, 말복이 지나고 비가 한두 번 오더니 아침에는 선선해지고 있다. 더불어 올해 6월 전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 사태'도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듯하다. 늘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로서 응급실에 내려가다가, 순수하게 보호자로만 지냈던 지난 2003년 독일의 응급실과 병원이 문득 생각이 났다.

12년 전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인 하이델베르그에서 5살 딸, 3살 아들, 그리고 아이들 아빠와 함께 약 18개월을 보냈었다. 연수 장소가 병원이 아닌 독일 국립암센터“DKFZ”이라는 곳으로(Deutsches Krebsforschungszentrum, German Cancer Research Center, Heidelberg, Germany)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를 발견하여 2008년에 노벨상을 받은 Harald zur Hausen 박사가 연구하는 곳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하이델베르그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습도가 높지 않아 무척 지내기 좋은 곳으로, 도시 전체가 연구소와 하이델베르그대학 등으로 무척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이며, 가을날 맑은 공기의 낙엽이 깔리면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풍경 수채화가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어린 딸, 아들과 함께 모처럼 시간을 보내게 되어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타지에서 제일 놀라고 힘든 순간들은 역시 아이들이 아플 때였다. 아침 일찍 문을 열어 무척 편리했던 학교 부설 '어린이집(Kindergarten)'에 다니던 3살 아들이 어느 날 커다란 철문(독일은 문들이 아주 무거웠다)에 손가락을 빼지 못한 채로 닫히는 상황이 발생하여, 실험실로 엄마를 찾는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마침 지하에서 동물실험 중이였던지라, 위층의 실험실 동료가 직접 내려와서 알려주어 더욱 놀랬었다.

다행히 하이델베르그 대학병원 응급실이 바로 옆 인지라, X-ray 찍고 결과를 보고 오긴 했지만, 모처럼 응급실에 보호자로 가서 보니 한국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왔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아픈데도 불구하고 응급실 밖에 일단 '대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관절개(tracheostomy)를 하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있는 할아버지 옆에 보호자인 고운 차림의 독일 할머니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침착하게 기다리고 계셨다. 물어보니 “이왕에 알고 있는 할아버지의 상태”이고 '기다림'에 대하여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쳐다보시는 것이었다. 응급실 내부는 한국의 응급실 커튼과는 달리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응급실 간호사부터 차례대로 들어와 문진을 하고 진행을 해주었다. 기다림은 힘들었지만, 체계적이고 좋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와 반대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하나 있다. 독일에서의 유학기간에 친해진 한국 유학생 중에 음악을 전공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딸과 나이가 같아서 모임에 가면 같이 어울리고 놀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급히 연락이 와서 보니 '장염'에 걸렸는지 열이 나면서 구토 증세가 있어 입원을 했다고 하였다. '입원'이라니… 아들 데리고 힘들어할 상황이 눈에 선해 시간을 내어 만나보니 “입원한 지 5일이 되어가는데” 매일 매일 담당의사가 바뀌면서 의학적 플랜이 달랐다고 한다. 어떤 의사는 척수검사(spinal tapping)를, 어떤 의사는 그냥 경과 관찰(observation)을 하다 보니 '조종사 없는 비행기'처럼 뚜렷한 진행 방향도 없이 아이는 계속 '금식'을 했다가 '식사'가 나왔다가를 반복했다 한다. 식사는 한국과 달리 검은색 호밀빵과 차가운 음식들로 독일 병원은 대개 아침과 저녁에는 차가운 음식들로만 구성된 식사라고 했다.

독일에 오래 간호사로 근무도 하셨던 교민께 여쭈어 보니, 독일의 의료제도 자체는 이원적 구조로 되어 있는데, 독일 국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법정 의료보험(Gesetzliche Krankenversicherung, GKV)에 가입하거나,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소득계층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민간 의료보험(Private Krankenversicherung, PKV)을 가입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의사'를 지정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1년 이상 지내면서 느낀 독일의 병원과 의료체계는 그 범위가 예방과 치료, 입원 및 외래환자 병원치료, 재활 치료, 처방조제 등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 광범위함에 놀랬지만, 같이 근무하는 동독 출신 실험실 동료가 엄청난 '세금'을 살짝 언급하며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며 대신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아쉬워했다. 당연히, 독일과 달리 세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이야기를 했다.

필자가 독일의 연수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도 10년이 넘어가지만, 최근 한국의 의료 환경과 보건·복지 분야의 변화가 급속히 이루어짐을 보면서 어떠한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보장의 적정성을 국민적 합의로 이루어내면서도, 보다 나은 양질의 진료를 선택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의사이면서도 가끔은 엄마로 바라보는 병원과 의료에 대한 생각이다. 개학을 하여 힘차게 학교를 향하여 달려나가는 딸과 아들을 바라보며 미래의 보다 나은 의료 체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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