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초음파 검사실에서 커튼을 제대로 가려주지 않는 의료기사의 무례한 행동에 수치심을 느꼈다.” “청진시 간호사가 브래지어를 갑자기 걷어 올려서 당황했다.” “진료실에서 몸을 진찰할 때 의사와 단 둘이만 있는 상황이라 무서웠다.” 진료 중 환자분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표현한 것들의 일부다.

최근 허리통증으로 한의원을 찾은 여중생을 한의사가 7차례에 걸쳐 ‘수기치료’를 명목으로 바지를 벗기고 속옷에 손을 넣고 음부를 만지거나 누르는 행동으로 한의사가 형사고발 되는 사건, 수면 마취 중 벌어진 통영 내시경사건, 남자 간호사에 의한 할머니 성추행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진료실 성추행사건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일부 비윤리적인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들과 의료기사들이 저지른 진료실 성추행사건과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환자와 의료인간의 신뢰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신뢰관계 붕괴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의료인들에게 있다.

무너져가는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의료인들이 먼저 나서야 할 시점이다. 진료실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고,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진료를 위해 구체적인 ‘환자를 위한 진찰실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 일부 병원에서 환자를 위한 권리장전 등이 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의료진들이 진료현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전무한 상태이다.

진료실에서 발생하는 성추행문제나 환자의 프라이버시 손상문제는 외국에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예방하고자 의사단체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샤프롱(chaperone)제도이다. 샤프롱이란 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여성 환자나 미성년환자, 정신지체 환자 등을 진료할 때 가족이나 보호자, 간호사 등이 함께 있게 함으로 환자를 안심시키고, 진료 중 발생 할 수 있는 성범죄 등의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이다. 보통은 환자와 같은 성별의 사람이 동반하게 된다. 샤프롱제도는 환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의료분쟁이 발생할 때 의사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의료윤리연구회와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 등을 통해 샤프롱 제도의 도입을 이미 5~6년 전부터 주장해 왔으나, 의료인단체들의 느린 행보와 나태함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 환자단체연합회가 나서서 샤프롱제도의 내용을 담은 ‘진료 빙자 성추행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1만명 문자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의료인 단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으니 환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취지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찬성한다. 그런데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세상을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것이 에티켓과 매너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할 때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고 살맛이 나게 한다. 에티켓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고, 매너의 표현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방에 들어가기 전 노크를 하는 것은 에티켓이고, 방문에 노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일은 매너이다. 만약 노크를 거칠게 쾅쾅 두드린다면 에티켓은 지켰지만 매너 없는 무례한 행동이다. 세상일도 이와 같다.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진료실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샤프롱제도가 누구나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방법이 매너이다. 톡톡하고 부드럽게 노크해도 될 일을 쾅쾅 두드려서는 삭막해 진다. 이런 유는 의료인단체가 ‘환자를 위한 진찰실 진료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해결 할 일이지 법으로 할 일이 아니다. 번지수가 잘 못 맞추어진 것 같다. 취지는 좋으나 접근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매너가 부족하면 좋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의료인단체와 함께 의논하고 좋은 방법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 의료인단체와 각을 세울 일이 아니다. 환자나 의료인이나 함께 존중하고 배려하는 작품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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