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태
고려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아시아 제일’ ‘국내 최초·최대’와 같은 수식어에 목숨을 건다. 그중에서도 ‘최대’라는 말을 듣기위해 덩치 키우기 경쟁을 벌이는 일을 많이 본다. 그런데 살다보니, 큰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최대라는 말 속에 품고 있는 ‘대형’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담겨져 있는 듯싶다. 그 뒤에 ‘사고’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 붙어 다니는 것이 철들고 난 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다.

그 기억을 더듬어 대충 생각해 낼 수 있는 사건·사고를 열거해 보면, 개발독재 초기인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1971년 대연각 화재, 1974년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먹고 살만해진 20년 후에도 대형 사고는 지속된다. 1993년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과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등등.

21세기가 되면 좀 나아지려나 했지만 빠르고 크고 높고, 그러나 싸게, 대충대충의 폐해는 줄지 않는다. 참사는 끊임없이 이어져서 2003년 대구 지하철참사, 2005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사건,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등이 일어났다.

2011년 ‘시크릿 가든’이란 대박 드라마에서 잘생긴 배우 현빈이 “그게 최선입니까?”라는 명대사를 유행시켰지만 최선을 추구하라는 말이 가진 교육의 한계가 TV를 넘지 못했고,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서면 나아질 것이라던 대형 참사의 발생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더욱 더 대형화 되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가슴 아픈 사고가 이어지는지, 2015년 우리가 맥없이 당한 메르스 사태에 비추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병원의 대형화와 환자의 밀집현상은 병원 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을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원가 이하의 보험수가 구조는 “국내 최대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아시아 최고를 지향하는 병원에서 세계 최대의 메르스 병원 내 감염 사고”를 유발했다. 너무도 불명예스런 최대와 최고이다. 명예회복을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야 예전의 명성과 믿음으로 돌알 갈 수 있을 것이다.

대형화 따른 위기관리 능력도 갖춰야

대형화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적절한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병원감염관리는 끊임없는 반복 훈련으로 의료진 모두에게 체화되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 돈이 드는 훈련은 적자 경영에 허덕이고 있는 병원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적자가 누적 되는 병원의 경영진은 돈도 안 되는 안전 관리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이것은 대형사고로 이어지며, 터지면 수습은 당연히 불가한 일이다.

이번 사태는 병원 감염관리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병원에 책임을 지우면 쉽게 정부는 발을 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다. 무너진 방역체계마저 민간이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

신종전염병의 확산은 이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면 다음에는 민간 병원이 누구를 위해 나서겠는가?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면 공룡과 맘모스가 언젠가 지구위에 존재했던 엄청나게 큰 동물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멸종했다. 또 동물원에 가서 보면 코끼리, 대형 악어도 멸종 위기종이라 설명되어 있다. 크고 힘센 것만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고 허약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도 아니다. 적절히 질 관리가 잘 되고, 변화에 쉽게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을 것이다. 누군가 묻는다. “큰 병원이 최선입니까?” 그것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되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른 병원이 그랬으면 벌써 부도났을 겁니다.”

이것이 정답일까? 외형을 키우는 것이 원가를 낮추는 길이 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규모의 안전한 병원은 그냥 꿈꾸는 것만으로 이제는 접어야할 것이다.

외형 키우면 원가를 낮출 수 있을까?

필자가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저기 과일가게에 수박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가격이 같다면 너는 어떤 것을 고를래?’ “큰 것” ‘큰 것을 사려면 자두도 꼭 함께 사야 한다는데 그래도 큰 것을 살 거야?’ “네, 그래도 큰 것” ‘그런데 너 자두는 안 좋아하잖아?’ “네, 그래도 큰 수박은 좋아합니다” ‘흠 그렇구나. 그럼, 큰 수박이 더 맛있니?’ “모릅니다. 먹어봐야 압니다” ‘그런데 내가 보니 큰 수박은 꼭지가 마른 게 별로 싱싱해 보이지 않는다’ “전 그래도 큰 것이 좋습니다. 엄마가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똑똑한 놈이다. 정말 잘 배운 착한 아이다.

글쎄 큰 것이 좋은 것일까? 큰 수박도 상하고, 작은 수박도 상한 것이었다면 큰 수박 먹고 배탈 나는 편이 덜 억울할까? 메르스 사태를 놓고 다시 되짚어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모두 다 상한 수박이다.

버리는 쪽이 낫다. 새 수박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박에는 정관장(正官庄)이 없단다. 공공의료가 없는 나라에서, 민간에게 공익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면서, 줘야 할 돈 조금 빨리 주면서 생색내고, 급전 막아주고 고리로 이자놀이 하겠다는 이런 정부를 믿어도 좋을까? 군대올 때 자기 쓸 총이랑 탄환은 꼭 사오라는 말이 곧 나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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