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역병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도 엉망이고 국민의 가슴이 타들어 가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문형표 장관 체제 동안 경제 부처의 드라이브에 밀려 외국인 영리병원(투자개방형) 1호(산얼병원)를 ‘울며 겨자 먹기’로 추진했고, 수년 째 준비한 건강보험제도 부과체계 개편 추진을 갑자기 보류해야 했다. 복지부 고위 관료들이 ‘복지부가 영혼이 없는 것 같다’며 자조했을 정도다. ‘메르스’라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청와대 대면보고 기회를 잡지 못하다 6일 만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한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질 때는 오히려 문 장관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역대 보건복지부 수장들을 둘러볼 때, 문민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만년 2류 부처’라는 자조와 무력감에 젖어 있을 때마다 구원투수 같은 새 수장이 부임해 조직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켜 왔던 사실을 상기하면, 새로운 기류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새 장관은 큰 그림을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왔으면 한다. 주요 복지 공약들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체계 개편,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제도 개편,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 등 정권 후반의 이슈들은 한번 손을 대면 수십 년 동안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역대의 구원투수 같은 수장으로 서상목, 손학규, 김근태,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꼽고 싶다. 보건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명칭이 바뀌던 1994년에 보건사회부 마지막 장관과 복지부 첫 장관을 기록한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1993.12~1995.5)이 첫 테이프를 끊은 후,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1996.11~1997.8), 김근태 통합민주당의원(2004.7~2005.12)에 이어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2008.3~2008.8)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들은 경기고등학교를 1965년 졸업한 61회 동창생으로 ‘보건복지 기수’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특히, 고교 3학년 때 문과 3개 반에서 서상목․손학규 전 장관은 1반, 김근태 전 장관은 2반 출신으로, 동기생들 사이에는 3반 출신은 언제 장관이 나오느냐는 농담들을 하곤 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3반인 김성이 교수가 장관에 임명됐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서상목 전 장관은 문민정부 세 번째이자, 제29대 장관으로 이들 중 가장 선임이다.

그간 보건복지부(옛 보건사회부)장관들이 정치권이나 군 출신, 지역 또는 여성 안배 차원에서 임명돼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직원들도 보신에만 급급해 왔으나, 서상목 전 장관의 기용은 이런 관례를 깬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1993년말 취임한 서 전 장관이 의료보장개혁위원회와 사회복지심의위원회를 발족시켜 의료보장 개혁과 21세기 사회복지정책과제를 강력히 추진하고 1994년 말에는 충북 청원에 3백만 평 규모의 오송 보건의료과학단지 조성과 함께 산하 연구기관의 전면개편이란 ‘카사블랑카 구상’을 내놓았다.

이어 문민정부 7번째이자 제33대 복지부장관에 등극한 손학규 전 장관은 ‘악수’를 좋아하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청사 수위부터 시작해 여직원에다 실, 국장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뻣뻣한 장관들에게 익숙했던 직원들은 너무나 다정다감한 손 전 장관의 모습에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손 전 장관은 무엇보다도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내부적인 일은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어려운 일은 장관이 책임지고 짊어졌다. 그는 중요한 일에만 관여를 했다.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책임져주니 직원들은 다들 신바람이 나서 일을 했다. 특히, 손 전 장관은 재임 시절 국가적 중요 현안이었던 ‘한약분쟁’을 무난하게 매듭지어 한의사, 약사 두 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또 장애인과 노인, 여성, 서민의 복지 확충을 통한 제도정비에 힘썼다. 4대 사회보험의 기초가 닦인 것도 그의 재임기간에 이뤄진 일이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가장 같이 일하고 싶은 장관으로 손학규를 뽑는다.

참여정부 때 2대째이자 제43대 장관으로 발탁된 김근태 전 장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발언해 그 말은 ‘올해의 말’로 선정될 정도로 회자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입각 과정에서 정치적 파문이 거셌던 점을 의식한 듯 2004년 7월 1일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타고 온 배를 부숴 버리고 밥 해 먹을 솥을 깨어버리는’ 결전의 각오로 업무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장관 선임을 둘러싼 잡음을 떨쳐버리고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발언으로 유명세를 탔다. 김 전 장관은 “배를 부수고 강을 건너왔더니 ‘고령화’와 ‘양극화’의 위험이 눈앞에 도사리고 있었다”며 “국민연금 개혁, 노인요양제도 준비, 건강보험 혁신, 사회 안전망 확충 등과 같은 방안을 추진한 점은 보람 있게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이면서 제46대 장관으로 보임한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는 ‘현장형 복지 전문가'로 통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학자이면서도 현실 참여 경험이 풍부한 것이 강점이다. 하지만 정치권 감각과 정책추진 경험이 부족한 것이 단점으로 꼽혔다. 김 전 장관은 2008년 5월 13일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논란은 협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외교통상부의 잘못인데 농림수산식품부가 대신해 매를 맞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전 장관은 광우병 파동에 휩쓸려, 재임기간 5개월로 비교적 단명 장관에 만족해야 했다.

이처럼 보건복지부의 제반 정책에 대한 기본철학의 정립이 시급한 시기에, 경기고 61회 동기생 4명이 색깔은 달랐지만(‘4인4색’) 한 부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복지부의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의 변화를 수용하고 변신하는데 촉매제가 됐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 구원투수다운 새 수장을 통해 복지부의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정책이 장기적인 비전이나 철학적 바탕에서 추진되고 조직의 새바람을 불러 일으켜 ‘만년 2류 부처’라는 자조와 무력감에서 벗어나 21세기 보건의료를 주도하는 1류 부처로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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