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산부인과 원장
“이번 주말에 우리 아이 돌잔치 하는데 원장님 꼭 오세요.”

N 님이 수줍게 말을 꺼낸다. 그녀는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과 동남아 난민 수용소를 거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꿈에 그리던 자유대한민국에 안착한 북한 이탈 주민이다.

함께 탈북 한 남편과의 사이에 기다리던 아이를 잘 낳아서 드디어 첫돌을 맞게 된 것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요즘은 처음보다 많이 안정되고 행복해 보인다.

참 차분하고 선한 심성을 가진 분인데 현재는 만두 공장을 다니신다. 그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어느 날은 고아원 등 복지시설에 가서 빨래, 청소 등 봉사활동을 하고 온다며 기분이 아주 좋다고 했다. 그녀가 다니는 만두회사 여사장은 특별히 탈북민을 사랑하여 많이 채용하고 배려하고 또 봉사활동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참 멋진 비전을 가진 분인 것 같다. 잠깐 대화하면 알아차렸던 말투와 외모도 많이 세련돼졌다. 점차 우리사회에 잘 동화되는 느낌이다.

10여 년 전쯤 성남에 자리한, 탈북민이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입소하여 일정기간 합숙하며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훈련을 받는 곳인 ‘하나원’으로 진료를 나간 적이 있었다.

기독여의사회의 일원으로 선교목적으로 목사님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팀을 이뤄 한 달에 한 번씩 여성 탈북자들만 모여 있는 이곳에 진료를 하러 갔었다.

하나원에서는 아직 순수한 상태의 탈북민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이는 북한에 그냥 있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았는데 잘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조선족 상인의 말에 넘어가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녀가 팔려 간 곳은 나이 많은 중국 맹인의 집이었고 거기서 아이를 하나 낳고 살다가 너무 살기 힘들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홀로 대한민국으로 도망 왔는데 아이가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고전무용을 했었다는 기쁨조 출신의 평양미인의 탈북 사연도 듣게 되었고, 상해에서 대사관 담을 뛰어내리다 허리를 다쳐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탈북한 뒤엔 태국 등 동남아를 거치거나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데 몽골 쪽은 사막을 거치기 때문에 많이 위험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다들 목숨 걸고 사선을 넘은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사선을 넘어 자유세계로 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많이 불안해하며 매사에 의심이 많고 예민해 보였다. 성심껏 진료하고 투약 후엔 목사님이 붙들고 사랑의 기도를 하였는데 많은 이들이 안심을 하게 되고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몇 년간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했었는데 그곳 하나원이 폐쇄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2000년대 초에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넘나드는 꽃제비들을 데려다가 남한에 정착시키는 다리공동체(남과 북을 잇는 다리)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곳을 대한기독여자의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돕고 있었다.

남한에 와서 보니 이들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 너무 키가 작아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 되어 있었다. 그래서 몇 명을 선정하여 성장 호르몬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비용대비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따듯한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한글 터득 교육도 시키고 양자와 양녀로 삼기도 하였으며 교복을 사주고 크리스마스 파티도 열어주었으며 예방접종 및 진료도 해 주었다.

G는 탈북하는 과정에서 기차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는데 그 후유증을 치료해주고 의족도 해주었다.

이런 청소년들을 계속 잘 보살펴 줘서 이 사회에 잘 적응 성장하게 노력해할 의무가 우리에게도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여러모로 어려운 일들이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 의협은 지난해 11월 9일 인천남동공단 인근 한누리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들과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고려인, 난민, 한누리학교 학생 및 학부모들을 위해 의료사랑나눔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14년 11월 9일 인천의 남동공단에 있는 다문화 학교인 한누리학교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과 함께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사랑 나눔” 행사가 대규모로 열렸다.

필자는 당시 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로써 이를 주관하게 되었다.

이곳은 새우젓으로 유명한 소래포구 가까운 곳으로 탈북민이 대규모로 사는 지역인데 이분들이 주중엔 일을 하기 때문에 꼭 주말 휴일진료를 원했다.

탈북민뿐 아니라 외국난민들, 외국인 노동자, 사할린 동포, 다문화 가정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40여명을 비롯하여 자원봉사자가 160명이나 되었고, 의료인외에도 변호사가 4명, 출입국 비자 등을 상담 해결하는 행정사 2명, 기타 상담사 5명이 참석하였다.

이·미용 봉사도 하였고, 진료 받은 개개인에게 선물을 전달했으며, 이들에게 제공된 자장면은 600그릇, 호떡은 2000여개가 되었다. 특히 10명의 탈북민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질서유지와 꼭 필요한 분야를 찾아가며 힘을 보태 더 의미가 있었다.

10개국이상의 60여명의 난민들이 진료를 받았다. 조국을 떠나 이곳저곳 유리하여 다니는 이들을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팠고 빨리 안착되기를 기원했다.

이 행사를 통해 600여명이 여러 과 진료와 검사를 받았고(전체인원;1500명) 200여명이 영양수액 주사를 맞았다. 많은 혜택을 받은 이들은 매우 좋아하며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이제 북한 이탈 주민이 2만 6천명이 넘어섰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한 핏줄을 나눈 형제자매이며 우리와 함께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가야할 사람들이다. 조국 통일을 앞두고 이들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 지리라 여겨진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길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 이라고 했고 디팩 초프라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것” 이라고 했다.

더 많은 의료인들이 탈북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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