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보건복지부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미래 먹거리산업으로 보건의료분야가 포함된 이후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산업부’ 처럼 행동한다. 보건의료와 복지의 관점이 아니라 의료산업적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임무와 목적이 ‘국민을 위한 보건복지’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을 위한 복지’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부터 보건과 관련한 보건복지부의 관심은 ‘해외환자 유치’와 ‘의료관광’, ‘투자활성화’ 뿐이었다. 해외유입 감염병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사스(2003년)와 신종플루(2009년) 파동을 겪었음에도 보건의료는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금년에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정부부처 중 보건복지부만큼 그 역할이나 업무가 방대한 기관도 없다. 보건위생과 방역, 의무행정, 약무행정, 건강보험, 보건산업, 기초생활 보장, 자활지원, 사회보장 및 사회서비스정책, 저출산․고령화에 대처하는 인구정책, 영유아 및 아동 보육, 노인 및 장애인 보건복지 등 국민 보건과 사회복지 증진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고 있다. 1949년 7월 사회부의 보건 업무를 분리해 보건부가 신설됐고, 1955년 사회부와 통합해 보건사회부로 재편된다. 보건사회부 산하에 노동청이 만들어지고 다시 복지연금국과 환경청이 신설됐다. 지금의 노동부와 환경부는 보건사회부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 부처이다. 1994년에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보건사회부에서 현재의 보건복지부를 거쳐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로 개편됐으며, 2010년 3월 청소년․가족 관련 사무를 여성부로 이관하고 다시 보건복지부로 환원됐다. 하지만 업무 범위에 비해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위상은 초라하다. 실제 정부조직법 관련 규정을 보면 국무총리 직무대행 순서 상 보건복지부는 현 17부처 중 12번째다.

특히, 최근 행태를 보면 기획재정부나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하위 조직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제부처에서 밀어붙이던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에 대해 반대하던 입장에서 돌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물론, 보건의료․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미래성장동력 운운하며 궁색한 홍보도 한다. 국내 의료전달체계도 엉망인데 해외환자 유치에 목을 매고 의료관광 활성화가 마치 보건의료의 총아인 양 거품을 물고 강변하는 데다, 의료법인 영리자회사와 부대사업 범위 확대를 통해 병원이 돈벌이에 나서라고 등을 떠민다. 경제부처들이 하는 것을 말려도 모자랄 판에 ‘억지 춘향’ 식으로 앞장서 나선다. 어쩌면 메르스 사태는 보건에 대한 현 정부의 홀대가 빚은 결과이자, 시스템의 실패로 봐야 한다.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실행된 이후 국민 위생 수준이 올라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자, 정부는 보건위생과 방역 등 공공의료가 어느 정도는 완성됐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지난해 8월 19일에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문형표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의료산업 육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인 부대사업 범위 확대를 ‘의료민영화’로 해석하고 주장하는 건 괴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넓혀 의료산업을 키우는 건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세계화”라고 강조했다. 문 장관은 의료산업 육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복지부를 빗대 ‘보건의료산업부’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지적에 대해 “의료법인 부대사업 규제를 풀게 되면 (의료서비스) 공급자 입장을 상당히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의료산업 발전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면 우리 국민이 1차적 혜택을 입는다는 점에서 의료산업 육성이 의료공공성을 훼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 장관의 국정 철학은 보건분야에 비전문가여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보건복지부의 제반 정책에 대한 기본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필자는 지난 199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약분쟁도 관련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이끌려 다니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킨 현장을 목도했다.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정책이 장기적인 비전이나 철학적 바탕이 없으면 상황에 따라 미봉책(彌縫策)으로 집행되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종감염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 정비를 언급했다. 메르스 사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흘러나온 조직 개편에 관련 부서가 벌써부터 동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공중보건위기 대비 조직역량 강화안’은 질병관리본부(질본)를 ‘질병예방통제본부’로 개명하고, 현재 3센터인 체제를 4부 1센터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형식적으로는 질본의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는 듯 하지만 위기 시 병원 폐쇄, 인력 차출 등 긴급대응 권한은 여전히 보건복지부가 쥐고 있어 업무영역이 분명치 않다. 서두른 모양새가 역력하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조급하게 이뤄지는 조직개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은 개편자체가 실효성보다는 당장의 전시 효과를 염두에 둔 탓이 크다. 오히려 사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간의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 꼭 필요한 기능을 보강하는 실무형 개편방식이어야 믿을만해 보이고 제대로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사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의 대응실패는 실무조직과 구성원들의 문제도 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컨트롤타워의 부재였다. 초기 위기인식이 안이했고 이후 대응이 상당기간 중구난방이었던 것이 그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으며 이것이 국가의 최우선 임무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보건복지부 공직자들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보건의료산업부’ 라는 왜곡된 오명(汚名)을 들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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