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요즘 청진기를 직접 살에 대고 청진을 하지 않는다. 왜?
2013년 ‘아청법’ 시행 후 진찰실에서조차 위축된 분위기

▲ 주영숙 한국여자의사회 이사
주영숙 한국여자의사회 이사
요즘 여러 분야에서 화두가 되는 윤리라는 게 뭘까? 윤리(倫理)라는 걸 사전을 찾아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 이라고 나와 있다. 법률가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법조윤리’ 라 하고, 2010년부터 법조윤리시험은 로스쿨 전문대 출신 대상으로 변호사 본시험 전에 치러지고 있다. 물론 기업에도 정보통신에도 윤리가 있고, 의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의료윤리’ 라고 한다.

오래전 의대 학창시절 철학은 배웠지만 따로 의료윤리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의료윤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윤리과목을 정식으로 배우고 있고 또 몇 년 후부터는 의사국가고시에도 정식으로 포함될 계획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전부터 의학에 스며들어있던 의료윤리라는 게 새삼 왜 드러나게 된 걸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보더라도 실제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면서 몇 가지 조심할 것도 있겠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그냥 의사로써 환자를 만나고 그 환자의 불편한 점을 듣고 진찰과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리고 그걸 바탕으로 최선의 치료를 해주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사회에서의 눈길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나보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진료실에서 환자와의 대화 하나하나에 윤리적인 문제가 내포돼 있다. 그런데 이런 각기 다른 상황들에 대해 답하려면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하니 우리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공감대를 알아야 하는데 이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지내야한다.

주위 의사들은 청진기를 직접 살에 대고 청진을 하지 않는다 한다. 정확한 청진을 위해서는 직접 살에 대는 게 당연하고, 이 과정에서 약간의 수치심은 가질 수는 있지만 그걸 감히 성추행으로까지는 몰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이유는 2013년 아동 성범죄로 시끌하던 즈음 진료실에서 일어난 몇 건의 성범죄와 맞물리면서 일명 ‘아청법’ 이라는 성범죄에 관한 법이 통과되었다. 이유 불문하고 해당되는 의사들은 10년씩이나 면허취소가 되는 강한 법으로 진찰실에서조차 위축된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또 의약분업 이후 각과의 경계가 무너졌고, 실제 유사의료의 범람으로 의료의 전문성이 많이 훼손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는 의료에 대해서는 의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사들만 독점하고 있다는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의사의 전문성에 실력은 물론이고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의사들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도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의사들로 하여금 소신진료, 양심진료를 할 수 없게끔 만드는 ‘관치의료’ 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저수가로 인해 많은 환자를 봐야 유지가 될 수밖에 없으니 수익이 많은 영역만 하고 싶도록 만드는 왜곡된 제도와 구조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또 정부의 지나친 간섭 그리고 편한 방법으로 툭하면 만든 누더기 의료법에 가둬두려는 이 사회의 인식개선이 먼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같이 어우러져야한다. 환자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기본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든다.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는 변하고 있고 또 큰 의미 없는 행동이 비윤리적인 행위로 보이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결국 철학적 사고로 환자와의 소통을 하고, 고통의 문제를 같이 의논하며 나아가 삶과 죽음도 깊이 고민해주는 의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윤리문제에 관심 갖고 같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2010년부터 ‘의료윤리연구회’ 라는 모임을 만들어 윤리이론뿐만 아니라, 각종 의료윤리적 현안들에 대해 매달 첫째 월요일에 의협에서 모여 공부를 한지 오는 7월로 벌써 5년이 된다. 물론 이 연구회는 개방되어 있으니 원하면 공부하는 날에 오면 된다.

또 추무진 의협회장도 의료윤리의 중요성과 윤리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평점을 부여하는 연수강좌가 7월18일 토요일에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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