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태
고려대학교 의인문학교실 교수
올해는 5월과 6월에 걸쳐 벌써 한 달이 넘게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저 놈이 잘못이다. 네탓이다. 어쩌고 하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해체 된 것이 원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염병 도는데 정권을 논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사시는 분들의 사고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할 것이고, 그것이 부족하면 서울시장님께서 힘써 주실 터이니, 우리 같은 의사들이야 그저 목숨 걸고 막으면 되는데 뭔가 사회적 분위기는 싸하다. 저 놈 의사들이 게을러서 이렇게 국가비상사태가 터진 것이고, 제대로 감염관리를 못하니 저 집안 애들 학교 나오면 병이 번질지도 모르니 등교하는 것도 막고, 같이 놀지도 못하게 하자는 것이 학교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어 의료인을 슬프게 한다.

이 슬픔의 한복판에 낙타가 서있다. 낙타에게 질병을 일으키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찌 어찌 경로를 타고,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켜 아라비아반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것이 2012년인데 어느새 우리나라로 들어와 집단공황 상태를 만들고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던 낙타가 갑자기 우리 생활의 한복판을 훅지나서,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공포의 동물로 변해있다. 낙타는 사막지역에 적응하여 살고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풍토가 안 맞는 동물이다. 그런데, 역사를 뒤져보니 우리의 정서와 문화와도 잘 맞지 않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된다.

고려 태조 9년 서기 942년에 만부교 사건이라 부르는 낙타와 관련된 일이 있었다. 거란의 사신이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데리고 고려에 와서 외교관계를 트고자 했는데, 왕건이 사신 30명은 외딴 섬으로 귀양을 보내고, 낙타는 개경의 보정문 안에 있던 만부교라는 다리에 매어놓고 굶어 죽게 한 사건이다. 이 일로 인해 양국관계는 단교로 이어졌고, 이후 3차례 거란(요)의 침략을 받게 된다.

후세에서 이 일을 평할 때 싫으면 돌려보내지 왜 굶겨 죽이기까지 해서 백성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느냐는 평도 있고, 북방정책의 의지를 강하게 보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사람이 뭔 일을 하면 양편으로 나뉘어 개떼처럼 짖어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화인지도 모르겠다는 불온한 생각은 나만의 관점이리라 믿는다.

◇낙타는 고려·조선에서도 ‘냉대’= 조선의 성종은 동물 사랑이 유별났다는 기록이 있다. 1468년(성종 17년) 임금이 ‘중국에서 낙타를 구입해오라’는 명을 내리고, 흑마포 60필을 구입비용으로 책정하자, 대사헌 이경동이 그 비용으로 콩 400석을 살 수 있는데 쓸데없는 짐승 한 마리 사려고, 백성의 혈세를 낭비할 수는 없다고 불가론을 개진하면서, 고려 태조 왕건이 만부교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오랑캐의 간계를 꺾고 북방진출을 하고자 한 것이며, 후세에 지금과 같은 사치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함이라 하며, 역사에 애완물이나 좋아하는 임금으로 기록되면 어쩔 것이냐고 닦달을 하자 성종이 꼬리를 내렸다고 전한다.

낙타는 고려에서도 조선에서도 그리 환영 받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인해 서울대공원에 있던 낙타마저 격리 수감되는 곤혹을 겪었다.

◇책상 위 행동지침은 서류일뿐= 2014년 3월 28일자 Science에 실린 ‘The Camel connection’ 이란 기사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낙타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 질환이 전형적인 동물원성 감염증(Zoonosis)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기사가 나오고 유럽 러 나라에서 이 질환이 문제가 되자, 질병관리본부나 감염병 전문가들이 국내에 이 질병이 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를 했다고도 하고, 방역을 강화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밝힌 기사는 나도 접했다.

그런데 내 주변의 거의 모든 의사는 처음 들어보는 질병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들이 공부를 지독히 안하고 게으른 의사들이어서 그럴까? 전문가들끼리 큰 일 날지 모르겠다고 법석을 떠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 가장 현장에 가까이 있는 의료인에게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소식이 전해지고 행동 수칙이 전달되어야 그것을 보고 국가의 방역체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공무원의 책상위에 있는 행동지침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정부 ‘낙타 경고’ 철저히 대비해야= 전체 보건복지부 예산 약 56조원 중 고작 4.3%인 2조원 정도가 보건예산인데, 그것을 현장에 까지 전할 수단이 있었겠는가 하면 이해는 간다. 또 보건복지부가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에 수족으로 부릴 말단 기관도 존재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긴 하다. 공공의료기관 대한민국에는 그런 것 없다고 무시 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보건소는 지자체 소속이라 따로 움직이는 기관임에 틀림없는 것을 우리는 요즘 뉴스를 통해 보고 있다. 지금은 누가 잘했는지 잘 못했는지는 병이 잡힌 후에 따질 일이고 지금은 총력을 기울여 확산을 방지해야 할 때이다.

낙타는 물샐틈없는 감시의 벽을 넘은 것도 아니고,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도 아니다. 말로만 세계 최고라는 우리의 의료체계를 그냥 어슬렁거리며 넘어 들어온 것이다. 우리의 의료시스템,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두가 입만 벌리면 한목소리를 낼 정도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든 정치가와 언론이 다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그 잘난 우리의 시스템을 개혁할 시기가 왔다. 천년이 넘는 낙타와의 악연을 끊고 이번에는 낙타의 경고를 확실히 이해하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낙타는 비싼 동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낙타에서 유래한 이 질병을 막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것이다. 돈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먹고 노는 문제보다는, 죽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국방이 돈이듯, 방역도 돈이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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