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훈
고려의대 정형외과 교수
2011년부터 최근까지 보건의료, 보건행정을 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이라는 주제 강의에 사용되는 필자의 자료를 보면 첫 장에는 근사한 삼성서울병원의 암센터 로비 사진이 나오고, 그 다음 장에는 최첨단 로봇수술 장비 사진이 나온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의료수준이 선진국일까?’라는 의문을 제시한 뒤 다음 장에서는 우리나라 병원의 6인실 사진이 나온다.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 사진 하단에는 ‘과연 선진국 의료는 맞는가? 감염관리에 취약한 이런 모습 이대로 좋은가?’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제로 전국에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환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진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이 시스템 이대로 방치할까?’라고 묻고 있다.

필자의 2011년 강의 자료가 그렇다. 필자가 아주 똑똑해서 오래전부터 이런 주장을 해 왔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메르스 사태는 병원의 질 관리를 담당하는 QI 관련자들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던 우리나라 의료의 대표적인 고질적인 문제인 일반인이 함께 상주하는 통제 불가능한 다인실 문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료 선진국수준 아니다 = 필자는 결단코 ‘한국 의료는 선진국 수준의 의료’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의료보험체계’ 라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들을 하는 것일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보다 의료 후진국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중동 환자들은 우리처럼 이런 식의 다인실에서 치료 받지 않는다.

대한민국 메르스 사태의 본질은 매우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의 환자가 체계화된 입원 정책에 근거하지 않고, 입원을 해서는 감염관리에 전혀 문외한인 일반인 가족들이 환자 곁에서 상주하면서 치료받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 것이다.

여기에 응급실 내원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초응급이 아니면 방치하기 쉬운 관행에다가 자기 지역의 의료기관을 믿지 못하고 무조건 서울의 대형 병원을 선호하고 그 와중에 이곳저곳의 병원을 편안하게 들락거리는 우리의 의료문화가 만들어 낸 종합세트인 것이다.

선진국 그 어느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6인실처럼 6명이, 그것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12인실을 운영하는 곳이 있던가? 아마 침대를 다 빼고 바닥에 자리를 잡아도 12명의 공간으로는 넓지 않은 그런 공간에 다인실이라는 명목 하에 질병에 따른 병실 운영 정책이 아니라, 그저 빈 곳 있으면 입원하는 상황에서 공기 전파가 아닌 메르스 이기에 망정이지 공기 전파 바이러스였으면 지금의 이 난리는 난리도 아닐 것이다.

우리 식의 문화에 젖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당연시 하고, 초기 대응의 실패가 문제라느니, 향후에는 상시적인 대응체계를 만들어서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환자-보호자 다인실 공동사용 문제=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가 병원 안팎을 수시로 드나드는 보호자와 함께 다인실에 모여서 치료를 하는데 과연 그런 상황에서 환자 감염관리가 가능할까? 오늘은 아들이 내일은 딸이 와서 간병을 한다.

아들은 주말에 간병하고 지방의 직장으로 출근을 했고, 딸은 주중에 와 있다가 주말에 집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같은 병실에 어떤 위험한 환자가 입원했었는지, 그리고 그 환자 곁에 누가 왔다 갔는지도 알 길이 없다.

뒤늦게 메르스 감염 환자라는 것을 안들 병원 내 이송반 직원도 감시 대상에서 빠지는 판국에 일반인들을 어떻게 선별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번에 방문한 WHO 관련자들은 첫 일성으로 가족 간병을 포함한 한국의 후진적 의료 문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들이 매우 점잖게 지적을 하다 보니 이 부분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작년부터 시민단체 등의 요청을 근거로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대형병원들이 1~2인실을 상급병실로 규정하고,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의심의 눈초리 하에 정부는 6인실의 연수원식 병실을 의무적으로 70%까지 확대하라는 규정을 만들고, 오는 9월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선진국 병원을 가 본 의료진, 공무원 그리고 시민단체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한 사람도 없음이 분명하다. 조용한 환경 하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케어(care) 받는 선진국의 병실문화를 조기에 도입하자는 주장은 못 할망정, 우리는 스스로 후진국형 병실 스타일을 더욱더 공고히 하자는 쪽으로 국민적 합의를 한 셈이다.

◇병실문화-진료전달체계 짚어봐야 = 메르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 논의가 되겠지만, ‘향후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논의에서 전염병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후진적 병실문화와 전혀 통제되지 않는 진료전달체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으면 한다.

당연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감염내과 의사의 수가 부족했다느니, 감염관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의 부족했다와 같은 곁가지 적인 논의에만 그치지 말고 말이다. 선진국 의료 수준이라는 근거도 없는 주장에 오늘도 우리의 국민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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