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임기(任期)가 있는 것인가. 임기란 임무를 맡아보는 일정기간을 말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하지만 장관의 임기는 전적으로 임명권자의 결정에 달렸다. 어느 날 갑자기 돌발사태가 생겨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아니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 경질되는 수도 있다. 장관은 업무를 제대로 파악해야 조직을 통솔할 수 있다. 대체로 기업이나 학계 등에서 장관으로 발탁된 사람들이 업무 파악이나 조직 장악에 실패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살아온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전직 보건복지부장관은 “장관에 취임해 부내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하려면 최소 반년은 필요했다”고 말했다. 출신에 있어서, 관료나 의사 출신 등에 비해 ‘자질만 된다면’ 정치인 출신이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좁은 전문성에 함몰되기보다는 좀 더 국민의 입장에서 정보를 판단하고 정책을 추진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대책, 국민연금, 건강보험, 의료개혁 등 산적한 중대 현안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직능단체 등을 감안할 때 정치인의 조정 및 조율 능력이 강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경력을 쌓는 단계로 장관자리를 이용하거나 인기를 노린 ‘보여주기’에 치중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에 필자는 문민정부로부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의 평균 임기를 헤아려 보았다. 물론 대상은 필자가 출입기자로 활동한 기간 중에 재임했던 인물들이다. 혹자는 “대통령과 장관의 임기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 일도 있지만 통치권자의 생각은 달랐다. 문민정부(김염삼 정부)의 보건복지부장관(8명) 평균 재임기간은 7개월 15일이었고, 국민의정부(김대중 정부) 복지부장관(7명)의 평균 재임기간은 8개월 15일이었다. 참여정부(4명)와 이명박 정부(4명)는 모두 14개월 21일로 같았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진행형이라 제외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동일한 가운데, 국민의정부, 문민정부 순이었다. 하지만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들어 장관의 재임기간이 줄어들었다. 이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신세진 사람들이 많아 그런 것 으로 분석된다. 장관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이면 겨우 업무파악해서 나름대로 정책을 펴 나갈 만 할 때 그 자리를 물러나는 셈이다.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5대 정부에 이르기까지 최장수(最長壽)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의 전재희 장관(이하 ‘C 장관’)이다. 그는 약 2년 1개월간을 재임했다. C 전 장관이 재임하던 시절의 사건으로는 신종플루 극복, 치매와의 전쟁을 꼽을 수 있다. C 전 장관은 “치매환자 중 병원에서 진단받는 환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비율이 15%, 부정기적으로 치료받는 사람이 15%이다. 실제로 대부분인 70% 이상 환자가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뇌혈관 응급진료 체계 정비와 관련, “가장 큰 문제는 그 분야에 의사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이것을 건강보험으로 어떻게 정리해줄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C 전 장관은 대한민국 여성 제1호 행정고시 합격자, 중앙부처 사상 여성 최초 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도 광명시 관선·민선시장을 거쳤으며 지역구 의원 3선을 역임했다.

그렇다면 단명 장관은 누구인가. 재임기간 1개월 이하를 보면 문민정부 때 박양실 초대 장관으로 10일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1개월에서 6개월 이하를 역임한 단명 장관은 주양자 장관이 1개월 27일, 이성호 장관 3개월 4일, 이태복 장관 5개월 11일, 김성이 장관 4개월 22일 등이다. 이들은 말만 장관이지 실제 장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장관들의 재임기간이 김성이 장관(4개월 22일)을 제외하고는 평균 14개월을 넘김으로써 상대적으로 재임기간이 길었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정 각부의 수장인 장관은 리더이자 참모의 덕목을 모두 갖춰야 하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위로는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지만 아래로 적게는 수백 명에서 수십만 명의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은 권력창출 과정에 공로가 있는 공신(功臣)의 전리품 또는 청와대의 말을 잘 듣는 인사들이 경력 관리를 위해 거쳐가는 자리쯤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선 청와대 비서실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다 보니 장관들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실세가 아니면 재임중 대통령을 독대(獨對)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다. 문민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 보건복지부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약 10개월인 것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장관의 존재감이 그만큼 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기초연금 갈등 끝에 6개월 18일만에 퇴임한 진영 전 장관이 이임하면서 “대통령에게 수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비록 절제해 한 말이지만 그냥 흘려 넘기기에는 찜찜한 대목이 남았다. 진영 전 장관은 물러나면서 가슴속 사연을 다 털어놓지 않고 말을 아꼈다. 대통령에 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게다.

진영 전 장관은 박근혜 정권 출범에 기여한 인물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인수위 부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랬던 그가 청와대와 당에서 세인이 생각하는 실제장관이 아니라 정책 결정과정에 빠지고 당에서 뒷통수를 맞는 푸대접을 받았다면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관의 임기는 전적으로 임명권자의 결정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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