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균
서울 성북·이정균내과의원장
여가 정보학자 김정운 교수는 “휴(休)테크 전략은 21세기 경영의 핵심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먹이 사냥 때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지만 쉴 때는 최대한 느릿느릿 쉬는 습성은 ‘휴테크’ 를 상징한다.” 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 업무, 대인관계는 우리를 슬럼프에 빠지게 만든다.

휴식을 다시 생각해 보면 쉰다는 ‘휴(休)’ 자는 탈자해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고 있는 글자다. 얼마나 편안한 글자인가. 진정한 휴식은 먹고 자고 마시고 쉬면서 놀며 즐기는 것이 아닐까?

여행의 목적이 식도락, 휴식, 역사와 전설 속 여행도 있겠다. 걷기 열풍은 건강증진운동이요, 답사 여행은 여행의 프라이머리다. 지난봄엔 벚꽃여행을 몇 군데 다녀왔다. 청풍호·충주호 벚꽃길은 모두 다녔다. 설악산 벚꽃축제는 올해도 때를 놓쳤다. 충주호 주변 벚꽃은 눈에 벚꽃물이 들 정도로 모두 살펴보았다. 마의 태자 한이 서린 미륵사지, 신라 부활을 꿈꾸며 세웠던 미륵불 그리고 덕주사, 떠난 오빠 그리며 새겼던 덕주공주의 마애불 역사 여행길이었다.

전설에 “월악산 그림자 물에 비치는 날이 오리라.” 충주댐 들어선 곳 옛지명은 ‘물막이골’ 이다. 충북 청주 공항 활주로 설계를 끝내고 부지를 선정할 때 활주로 예정지역 양쪽 끝마을 이름도 흥미롭다. 비상리(飛上里)와 비하리(飛下里), 선인들은 공항이 생긴 날을 알았을까?

월악산(月岳山) 산꼭대기 육중한 바위, 대표적 악산(嶽山) 바위 틈틈이 숨어있는 전설과 사연, 깊고도 진하다. 월악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여행지, 미륵사지, 덕주사 마애불 그리고 수안보온천은 덤이자 필수다. 벚꽃여행은 역사와 전설여행으로 월악을 섭렵했다.

월악산과 충주호, 충주호의 벚꽃도 월악의 웅장한 자태를 알고 맹호처럼 우뚝 선 준엄한 산세를 이해한 뒤에 꽃놀이를 즐겨야 되리라.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닦인 길이다. 하늘과 잇닿았다고 생각되는 하늘재, 바퀴달린 차가 아니라 두발로 걸어 오르는 것이 마땅하리라.

거대한 충주호를 낀 월악산은 이제 막 바다를 향해 출항하려는 선박의 뱃머리 같다. 잔잔한 호수를 배경으로 솟아오른 바위산은 더더욱 높아 보인다. 월악은 중원 지방의 보석 같은 산이다. 달이 뜨면 주봉인 영봉(靈峰·1097m)에 걸린다고 해서 ‘월악’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에 ‘악(岳)’ 자가 들어있는 데서 짐작하듯 돌산이다. 이런 월악에 험난한 산세를 충주호의 부드러운 물이 쓰다듬어 주는 모양새다. 덕분에 내륙에서는 드물게 산맥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진 경관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맹호의 웅장한 자태, ‘천의 얼굴’ 을 지닌 영산,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위치한 영산 월악산은 충북과 경북도의 4개 시·군(제천·충주·단양·문경)에 걸쳐있다. 그 총면적은 284.5㎢, 1097m의 월악 영봉을 비롯해 150여m의 기암단애가 치솟아 있다.

▲ 월악산 영봉
월악은 맹호처럼 우뚝 선 준엄한 산세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끝을 모르고 내리 뻗은 깎아지른 듯한 산줄기, 그 사이사이엔 운치 있게 자란 푸른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청송들과 기기묘묘한 암반길을 따라 주봉에 이르면 잔잔한 충주호, 산과 들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월악산은 그 산 모양과 땅의 생김새는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수많은 애환을 품고 있다. 송계계곡에는 한 때 명성황후의 별궁이 있기도 했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과 덕주사 마애불상(보물 제406호)에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천년 명산유곡에는 사자빈신사지석탑(보물 제94호), 덕주산성(지방기념물 제35호) 석등 등이 남아있다.

월악은 그 산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정상의 모습은 각각 다른 형태로 다가오니 등산인이 많이 모인다. 북서쪽 20여km 거리, 충주시 달천 부근 계명산과 남산 사이로 보이는 월악 정상은 쫑긋한 토끼 귀를 보는 듯하다. 동쪽 덕산 일원에서는 쇠뿔, 남쪽 미륵리 방면에서는 수직절벽의 햇빛을 받아 히말라야의 지붕을 연상케 한다. 송계리는 서쪽 산행 시발점이다. 정상을 쳐다보면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인양 아름다운 자태는 상상의 날개다. 정상 영봉을 중심하여 동서 8km의 송계계곡, 다시 16km의 용하계곡은 쌍벽을 이루는 계곡의 위용이다. 맑은 물, 너른 암반, 천연수림이 어울려 천하절경을 이루는 계곡들이다. 흔히 세인들은 월악에 들어가 깊은 산속에서 월악의 얼굴을 다시 그려본다. 송계계곡은 영봉, 주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거봉들의 행진은 장엄하다. 맨 오른쪽의 영봉은 100여m 될 듯한 깎아지른 벼랑을 자연 그대로 들어내면서 중봉과 하봉 두 형제를 아우르고 있다.

영봉으로 오르는 길, 90도로 치솟은 암벽을 한바퀴 빙글 돌아서 오르는 급경사 계단의 연속이다. 영봉 일대의 암벽은 낙석이 잦은 편이다. 철망이 있지만 주의가 요구된다. 암벽 아래를 지나는 길은 가급적 빨리 통과하라고 권고하는 곳이다. 마애불 아래쪽, 6·25 전쟁 중 불타버린 상덕주사 대신 허름한 요사채(?). 영봉 북사면 그늘진 암벽, 꽃 피는 봄까지도 눈과 얼음이 점령하는 곳 언제나 조심지역이다.

수많은 계단을 따라 한참 오르다 뒤돌아보아 중봉과 하봉이 눈높이에 있을 즈음이며 해발 영봉 정상 쯤이다. 맑은 날의 영봉, 그 발아래 청풍호 그리고 수많은 산들이 일망무제, 영봉은 영봉이다.

월악산은 우리 반도의 중원(中原)에 해당하고 산형지세는 천혜의 요새, 그로 인해 민초들의 비원을 담은 전설과 수많은 역사적 상흔이 굽이굽이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땅이다. 월악산 최고봉 영봉은 백두산 영봉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신령스러운 봉우리다. 월악산의 이름은 ‘영봉에 걸린 달’ 에서 생겨났으니 암벽 높이 150m, 둘레 4km 되는 거대한 암반, 영봉에 걸린 달을 보면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법하고 휘영청 밝은 ‘달(月)’ 과 어우러진 ‘바위’ 는 음기(陰氣) 곧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월악산은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역사의 슬픔을 보듬고 앉아있다. 역사의 한이 서린 산, 삼국시대에 이곳을 지지하는 나라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해서 월형산(月兄山)이라고도 했고, 후백제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짓다가 무산돼 ‘놔락산’ 이란 이명도 얻었다. 월악산 미륵리와 덕주골에는 마의 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려있다. 고려 몽고 침략 때에도 월악산 부근은 치열한 격전지였다.

조선 말 동학농민운동 때도 전봉준의 스승인 서장옥이 녹두장군의 죽음 이후에 나머지 농민군을 이끌고 월악산에 웅거하며 다음을 도모하다 잔패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월악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소백산맥을 타고 활동했던 빨치산에까지도 이어졌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죽음 이후 북쪽으로 이동하던 마지막 잔당들이 산화한 곳이 월악산이다.

현대에 와서도 충주댐 건설로 이 주변지역이 침수되면서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땅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의 한이 서려있기도 하다. 참으로 수없는 사연을 영봉은 지켜보았다.

<의사평론가>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