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은 국민건강에 참 좋은 제도인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빨라야 5~10년, 길게는 한 세대가 걸린다. 의약분업으로 인해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진복지국가로 가야한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민이 돈을 더 낸다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의료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 질 높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제3대 보건복지부 수장을 역임한 차흥봉 전(前) 장관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의약분업 시행이란 특명을 받고 장관에 올랐음에도 불구, 1999년 5월부터 2000년 8월까지 의약분업 도입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의약분업 좌초 위기를 넘겼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척점에 섰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가 1999년 5월 10일 서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의약분업은 일사천리로 도입이 진행됐다. 중간에 의료계 전체가 거리로 나서며 극렬히 저항했음에도 불구,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지금의 의약분업도 이 5․10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라며 이 같이 회고한다.

의약분업 후, 감사원은 2001년 5월 17일 국민 불편과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주원인으로 복지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보고 축소 및 은폐’ 등을 내세워 징계방침을 정하고 당시 ‘의란(醫亂) 책임자’들을 문책한다. 의약분업 관련 공무원들이 준비한 기초적인 통계 및 분석 자료가 부실해 건전한 정책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복지부 관계자들은 당시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의 우려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국민 추가부담은 없다”고 주장하며, 약물 오·남용 감소 등 긍정적 측면만 부각시켰고 대통령에게 허위보고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의약분업 시행 이후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도 불구, 복지부가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편법으로 40% 이상 수가를 인상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초래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2000년 8월 취임한 최선정 전 장관 역시 의료보험수가 인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시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도 불구, 최 전 장관은 “저수가 저부담의 수가체제로는 적정한 의료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다”는 논리로,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먼저 수가부터 인상했다.

이후, 행정자치부 중앙징계위원회는 2001년 9월 13일 감사원이 의약분업 및 의료수가 인상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해임을 요구한 S 전 연금보험국장에게 정직 3개월, 같은 이유로 경징계를 요구한 K 현 가정보건복지심의관에게 감봉 1개월을 결정했다. 또한 내부 문건을 유출했다며 파면을 요구한 P 전 보험급여과 사무관에 대해 해임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L 전 보험정책과장과 J 전 보험급여과장에 대해서는 견책 조치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이었던 최규학 전 보훈처장 역시 재정보험 위기의 책임을 지고 2001년 4월초 물러났다. 의약분업 시행 당시 장관과 차관인 차흥봉, 이종윤씨 두 사람은 “추가 의료비 부담은 없다”, “약물 오․남용 감소” 등 일관된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채 2000년 8월 의료계 파업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함께 퇴각했다.

건강보험재정 위기를 가져 온 5차례의 수가 인상은 연금보험국 소관으로 당시 국장은 K 가정보건복지심의관과 S 국장이 번갈아 맡았다. ‘의란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은 화살이 자신들에게 겨눠지고 있는 데 대해 한결 같이 불만을 터뜨렸다. 한 간부는 “의약분업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등을 제때 세우지 못한 것은 일부 인정하지만 ‘부작용 고의 은폐’ 운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측은 “복지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복지부 측은 홍보기법상 실수로 일부 잘못 알려진 사실은 있을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감추면서까지 복지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할 이유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최선정 전 장관은 “죽어라 하고 일한 사람들을 징계한다면 어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겠느냐”고 징계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당시 청와대와 총리실, 민주당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한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인데도 이는 건드리지 않고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잘못이라는 논리였다.

복지부 모 과장은 “2000년 의약분업으로 재정이 절감된다고 강조한 건 장기적으로 분업이 정착단계에 들어서면 약제비 절감으로 초기의 의료비 증가분을 상쇄한다는 뜻인데 마치 초기부터 비용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비춰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선정 전 장관은 “(담당자 문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의료계 파업이 한참이던 2000년 8월 7일 취임한 최 전 장관은 “수가가 너무 낮아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므로 수가를 인상해야한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의약분업이 우리 토양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하기로 결론 내렸고 최선을 다했으니 되는 것 아니냐”며 “역사적으로 처음 해보는 일을 그만하면 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1953년 12월 약사법이 제정·공포된 이후 반세기에 걸쳐 숱한 쟁점을 뿌리며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렸던 의약분업은 조금씩, 조금씩 전진한 끝에 도입 1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의약분업은 여전히 논란의 소용돌이에 서 있다. 그간 의약분업으로 인해 국민의 불편이 고착화된 것은 물론이고, 약제비 증가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의약분업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하지만 ‘의약분업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의료계에는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 당시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과연 의약분업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의약분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빨라야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 만큼, 이제라도 복지부는 15년이 경과한 현 시점에서 올해 재평가를 실시해 보기를 주문한다.

필자는 15년 전 의약분업 시행을 눈앞에 두고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 시절 감사원이 일방적으로 보건복지부 측에 의약분업 혼선과 국민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관련 공무원들의 징계를 단행한 사실에 대해 이젠 복지부가 할 말은 하면서, 의약분업에 대한 재평가를 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래야만 그 시절 정치적 희생양이 돼 본의 아니게 징계를 당했던 전(前) 직원들에 대한 명예를 되찾을 기회를 찾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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