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희
서울대 의과대학장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다. 2011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81.2년(남성 77.6년, 여성 84.5년)으로 10년 전보다 약 4.7년 증가하였다. 백세 시대가 바야흐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건강수명(질병 없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은 늘어난 기대수명에 채 미치지 못한다. 80여년을 살면서 약 10년가량을 질병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서 숨 쉬는 일보다 더 큰 가치에 기반한 건강과 생명의 시대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국의과대학장-병원장(Association of Academic Health Centers, AAHC) 회의에서는 미래 사회에서 의학교육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사회, 국가간의 장벽이 무너지는 글로벌 시대, 자가진단과 치료로 대표되는 이동형, 지속가능한 (mobile and sustainable) 헬스케어 등 미래사회에서 의사의 역할은 현재와는 많이 다를 것이고, 이에 대비한 의학 교육의 개선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이 모여졌다. 사회적 책무성을 갖고 직업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시대에서 서로 협업과 역할분담을 할 줄 아는 의사로 키워야 한다.

의과대학은 환자를 치료하고 의학을 발전시켜야 할 인재를 양성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환자 진료가 점차 환자와의 문진이나 진찰보다는 검사와 장비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진료기록만을 쳐다보면서 환자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경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다. 대학과 의료계 내부에서 소통기술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환자 및 환자 보호자와는 물론이고 동료 의료인, 의과대학생 들과의 소통이 특히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온다. 그와 더불어 만성질환이 늘면서 질병을 잘 보살핌과 더불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환자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의학자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풍부한 인문사회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재가 의대생으로 입학해 미래에 인류의 질병문제를 해결하는 융합적인 의학연구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인재들이 창조와 융합을 통한 국가미래경쟁력을 높이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며, 결국 의료 산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여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융합의 시대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전국 41개 의과대학에는 약 1만 명의 교수가 근무하고 있다. 10%정도의 기초의학 전공교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대교수는 진료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 매 3-5년마다 돌아오는 교수 재임용, 승진 절차를 통과하기 위한 생존형 연구가 대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이 의대로 들어오고 있으니까 첫 번째 노벨상은 노벨생리의학상에서 나와야 한다고 압력을 가한다. 하지만 국가 전체 연구개발 예산에서 생명의학 분야로 투자되는 비중은 전세계적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가 나올 수 있을까?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의학 연구에 대한 국가 단위의 투자가 절실하다.

의학연구는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다. 연구 시설투자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즉 인력양성이 핵심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똑똑한 인재 밖에 없다. 세계를 이끌어갈 리더로 키워야만 한다. 의학연구를 전공할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고, 연구 전담 의사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 국가 미래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이유이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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