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향 교수
강북삼성병원 신장내과
몇 해 전 일이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중고등부 아이들과 주일 예배 후 남자아이들과는 축구와 농구로, 그리고 여자 아이들과는 실내에서 요리 실습-피자 만들기를 하기로 정하였다.

그런데 당일 날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다. 정작 남자아이들 중에서 여러 명이 ‘저 요리 할래요, 요리 할래요’ 하는 것이었고, 여자아이들 중에서 몇 명도 ‘저 축구 할래요, 농구 할래요’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만 해도 학교 교과과목에 ‘가정’ ‘가사’ 는 여학생 과목에만 있었고, 남학생 과목에만 ‘공업’ ‘상업’ ‘기술’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이제는 모든 것에 남녀구분이 없어진 것 같다.

TV에서 남자 유명 요리사(쉐프)를 접하게 되었고, 남자 가사도우미가 소재가 된 드라마도 있었다. 남자 미용사, 남자 간호사도 드물지 않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뉴스에서‘30 대 1의 경쟁을 뚫은 여성들, 특전사도‘여군 전성시대’를 소개하는 것도 보았다. 달나라 우주선에도 여자가 가고, 대통령도 여성이 되었다.

내년이면 ‘한국여자의사회’ 가 창립 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기록에 의하면 한국여자의사회는 1956년 1월 15일 ‘대한여자의사회’ 라는 이름으로 75명의 회원이 창립총회를 하였고, 당시 전국의 여의사 수가 650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6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은 전국의 여의사 수가 약 2만3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체 의사수의 20%를 여의사가 차지하고, 각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30~40%가 넘는다. 전공과목도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등 여의사가 없는 과목이 없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현재 우리 여의사가 대학병원장, 종합병원장, 구의사회장, 시의사회장, 국회의원, 장관, 총장, 학장, YWCA 회장, 세계여자의사회장을 당당히 감당하고 있다. ‘여성 전성시대’ 가 우리 의료계에도 느껴져지는 대목이다.

전통적인 남자의 세계에서 여성들은 세상에 나와 있을 때는 ‘남성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가정에서는 전통적인 여성의 방식이 요구되는,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슈퍼우먼(superwoman)이 되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의과대학 다닐 때 듣지 못하던 ‘바쁜 여성 증후군’(Hurried Woman Syndrome)이라는 병명을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미국 여성의학 권위자인 산부인과 전문의 브렌트 보스트 박사가 2003년 이 병명을 소개하였다고 하는데 직장이나 가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요구 받는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신종 질병으로 ‘워킹맘’ 은 물론이고,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리는 전업주부, 또는 과도한 직장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미혼 여성들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의 25∼55세 여성 네명 중 한명꼴인 6000만 명이 바쁜 여성 증후군 환자로 추정된다” 고 하였다. 미국보다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 여성들이 이 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치료는 스트레스 없이 일과 가정의 조화를 잘 이루어 가야한다는 것인데… 친구인 정신과의사 김혜남 선생이 몇 년 전 한국여자의사회 월례회에서 ‘여의사로 살아가는 것’ 에 대하여 강연을 하며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그 일의 주인이 되십시오.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사십시요” 라던 조언이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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