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의사평론가/
2001년 5월 31일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차등수가제도’를 폐지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행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일일 진료환자 수가 75건 이하의 경우 진찰료를 100% 지급하고, 100건까지는 90%, 150건은 75%, 150건을 초과하면 50%로 삭감하여 지급하는 제도이다. 도입당시 정부는 진료 수가를 삭감하면 재정은 절감되고, 환자들이 여러 병원으로 분산된다고 주장했었다. 상식을 초월한 논리를 15년간 우려먹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어서, 잘 낫고 친절하다는 소문이 난 의사를 찾는 것이 상식적이다. 대기시간이 길어도 이를 감내한다. 맛난 식당을 먼 거리에서도 찾아가고 줄을 서서 기다리듯이, 평판이 좋은 의사는 당연히 환자수가 많게 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삭감하고 있다. 게다가 환자의 분산 효과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의료를 단순 수량화한 관료주의 의료정책이고, 실력과 노력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무시하는 폭력이고 일종의 착취행위였다.

왜 이런 상식에 벗어난 제도가 나왔을까? 시간을 1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0년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대폭적인 수가인상을 단행한다. 그 결과 수개월 만에 건강보험재정이 바닥을 드러냈다. 급기야 2001년 5월 초법적인 건강보험 재정건전화특별법을 만들게 된다. 당시 김원길 담당 장관은 의료계에 고통분담을 호소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이 제도는 재정안정화를 위한 특별법이기에 한시적인 것이고, 어느 직역이고 고통분담이상의 손실분에 대해서는 추후 보상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장관의 말은 거짓으로 들어났다. 황당한 차등수가제는 15년이나 장수(?)를 누렸다. 자신들의 정책실패의 결과를 의사들에게만 뒤집어씌운 제도였다.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라고 국회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어왔고,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답변도 있었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가 최근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단 후속조치를 준비해 놓고…. 후속조치의 내용을 보면 환자에게 진료시간 정보를 공개해서 환자를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제안 논리는 치명적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국민들은 병원을 식량배급소나 의료배급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정부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맛나고 친절한 식당을 찾아가듯이 잘 낫고 친절한 평판 좋은 병원에서 치료 받고 싶어 한다. 이러한 국민의 선택심리를 모르고 세운 후속 정책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의료를 질이 아닌 양으로 보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의료의 발상이고 탁상행정이기 때문이다. 국민들 의식수준을 너무 저급하게 보는 것 같다. 국민을 무지하게 보는 것인지 본인들이 무지한 것인지 궁금하다. 의료기관은 의료배급소가 아니다.

두 번째, 진정 차등수가제를 폐지하고자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단지 말(馬)만 갈아타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호박에 금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만약 국민의 선택심리를 알면서도 후속조치를 준비하는 것이라면 얄팍한 속내가 엿보인다. 잘못된 제도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냥 폐지하면 된다. 웬 사족이 그리 많고 의혹을 부추기는 꼼수를 준비하는 것인가? 정부는 정말 무지한가 아니면 얄팍한 꼼수를 부리는 것인가? 사족을 떼어버리고 그냥 폐지하기 바란다. 잘못된 규제를 없애는 것이 진정한 규제기요틴이다. 이젠 국민도 의사도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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