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HIM 피폭자 구제 앞장 - 의료인재 육성·정보 공유
대한적십자사 인도적 차원 원폭피해자·활동 등 지원

▲ 김영찬
인천적십자병원 원장

지난 2월 초 나가사키 피폭자의료국제협력회의 초청으로 일본에 연수를 다녀왔다. 나가사키 피폭자의료국제협력회 (Nagasaki Association for Hibakushas’Medical Care: NASHIM)는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방사선 피폭사고로 인한 피복자 구제와 일본지역 이외의 피폭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1992년에 설립된 조직이다.

NASHIM은 피폭자 의료에 종사하는 인재의 육성, 피폭자 의료의 계승 및 정보의 공유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외 의사를 초빙 연수를 수행하고 피폭자의 일본 초청 치료와 피폭지역에 전문의사 파견 등을 실시하는 등 피폭자의 의료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으로 2차 대전의 원폭 피해자들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지원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원자력 피폭에 대한 재앙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현실이기에 원자력 피폭자에 대한 의료는 필수적인 분야이며 일본은 원폭 피해자의 당사자로서 이를 주관하고 있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회적·정치적 재앙에서 중립적인 입장으로 박애와 봉사를 하는 기관으로서 원폭피해자들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필자는 적십자사의 일원으로 본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을 통하여 나가사키로 향하였다.

한국에서 의사 5명이 참가했다. 적십자요원으로 서울적십자병원의 태혜진 과장(내과)이 동참하였고, 원자력의학원에서 이진경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부장(진단검사의학과)과 조민수 비상대응교육팀장(외과) 그리고 동남권의학원에서 최철원 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이 함께 연수하였다.

후쿠오카공항에 도착을 하니 NASHIM 측의 Mr. Seiji Nishi와 Miss Junko Asada 가 사인보드를 가지고 우리를 맞이 하였다. 이들은 한국말을 잘 하였으며, 한국어로 된 나가사키 지도 등 필요한 정보를 준비하여 한국의사들에게 제공하였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 고속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나가사키는 일본 남쪽이 섬인 큐수지역의 인구 45만의 도시로서 나가사키에 대한 핵심단어는 일본의 최초 개항지와 원자폭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곳으로서 천주교의 박해와 많은 서양인 특히 네덜란드인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었다.

도착 다음 날 아침부터 아침부터 연수가 시작되었고 빡빡한 계획에 의하여 움직였다. 오전에 일본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을 찾았다. 1982년도에 지어진 35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원폭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병원이다. 환자 중 약 40% 가원폭피해자 관련환자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흥미로운 것은 전체 환자 중에서 16%가 원폭피해자 2세였으며, 그 중 입원은 13%, 외래에 달하였다. 입원피폭자의 질환별 분류의 결과 악성신생물이 37,5%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정형외과질환과 호흡기질환이었다. 악성신생물은 폐암이 30.7%로 가장 많았으며 악성혈액암, 대장암, 간암 등이었다. 환자들의 특이한 점은 피폭자들에게서 암이 중복으로 발생한 사실이었다(2중발생이 773예 중에서 28예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방사선의 폐해라고 심증은 있었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부족하였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 연수 마지막 날 함께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필자, 일본 나사가키 의사회장이면서 NASHIM 회장인 Dr. Makimoto, 이경진 부장, 조민수 팀장이며,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나가사키대학의 Prof.Takamura, 일곱번째가 태혜진 과장, 여덟번째는 최철원 센터장이다.
‘일본적십자사 나가사키원폭병원’에서 입원하고 있는 피폭자의 평균 나이는 남자가 77.3세이며 여성의 경우 79.4세였다. 70년 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으니 지금의 환자들은 그 당시 7-8세의 어린 나이였다.

나가사키원폭병원에서 나와서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있는 ‘나가사키대학 원폭후 장애의료연구소’를 찾았다. 나가사키대학은 일본에서 최초로 1857년에 설립된 의과대학이었다. 네덜란드인 의사가 해군의 일원으로서 나가사키에 와서 서양의학을 가르킨 것이 일본 의과대학의 최초이며, 이는 나가사키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유럽의 문물을 받아 들인 항구라는 배경으로 인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나가사키대학은 일본 최초의 의과대학이며, 원폭이 투하된 중심에 위치하며 원폭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대학으로서, 방사선에 대한 시설과 연구는 탁월하였다. 나가사키대학의 나카시마 마사히로교수(Prof. Nakashima Masahiro)는 방사선 노출에 대한 의학적 현상이나 연구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방사선에 노출이 되면 뇌혈관 증후군, 위장관 증후군, 조혈기관 증후군 등의 급성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때의 급성기는 지나갔으며, 현재의 피해자들은 주로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어서 나가사키대학병원의 ‘국제피폭자 의료센터’를 방문하였다. 일본은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방사능에 의하여 피해를 본 환자들을 일본으로 초대하여 치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명실상부하게 방사선 피해관련 의학에 중심점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 이외의 원폭 피해자들은 세계적으로는 4300명 그리고 한국은 2900명이 통계에 들어가 있었다.

상기 기술한 연수 2일 째 활동은 노면전차(路面電車)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이러한 방식 즉, 노면전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일본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인상적이었다.

방문 3일째 다시 나가사키 의과대학의 ‘나가사키대학 원폭후 장애의료연구소’를 찾았다. 다카무라 노부루교수(Prof. Takamura Noburu)는 요 근래의 방사선 노출의 대표적인 사고인 러시아의 체르노빌사건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비교 분석하였다.

체르노빌은 후쿠시마에 비하여 오염의 정도가 심하였다.

그리고 원자력에 노출되었을 때 음식물과 우유 등의 주위 환경에 대한 관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석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결론으로 원자력 노출이 발생하였을 때 신속하게 피신을 하면서 음식 등의 식자재의 관리를 철저히 하면 방사선의 재앙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였다.

방문 4일째는 나가사키에서 원폭피해의 현장을 찾았다. 원폭중심지, 원폭자료관 그리고 평화공원을 찾았다. 원폭 피해의 비참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으며 다시는 원폭의 피해 나아가서는 전쟁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원폭피해자들을 돌보는 요양시설인 메구미노오카 나가사키 원폭 홈(Home, 일본은 요양시설을 ‘홈’이라고 부른다)을 방문하였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서 피폭자(被爆者, 일본 발음: 히박샤) 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시설의 운영은 합리적으로 잘 되고 있었고, 정부 차원에서 피폭자들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게 하고 있었다.

여기서 70년 전에 피폭을 받는 할아버지가 원폭 투하 때의 상황을 직접 증언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원자력에 대한 분명한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안았던 희생을 단지 한 순간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고 극복하면서 이를 원자력 피폭을 당한 모든 인류를 위하여 방사선의 효과에 관련된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지원을 하고 있었고, 이러한 일본의 노력을 높게 살 수 있었다.

이번 방문을 통하여 방사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방사선에 의한 재앙이 인류의 역사에서 다시는 재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피해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인류는 모두가 노력을 할 것이다.

둘째, 원자력의 안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방사능 물질은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셋째, 방사선에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전문가들의 지시에 따르면서 신속한 대피와 환경을 관리를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론 등에서 너무 확대하여 위험성을 부각되어 사회적 불안이 조성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연수 마지막 날 나가사키에서 공항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히박샤’라는 단어가 귀에서 계속 맴돌고 원폭의 비참한 피해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