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와 발리안의 공통점은 사회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본인에게 던져진 숙제의 해답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학교 교육과정을 막 끝낸 전공의들의 소리에 귀기울여
건강한 의료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전국보건소장협의회 초대회장

최근 케이블TV tVn에서 방영된 기획드라마 ‘미생’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20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 오직 바둑만 두던 한 청년이 특별채용으로 대기업 계약직사원이 되면서 겪는 일화들로 드라마는 진행됐다.

그 계약직 사원의 이름은 장그래, 그 장그래가 대기업의 사무실에서 맞닥뜨리는 매일 매일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해쳐야하는 동물의 세계와 하나도 다르지 않고, 바둑판 위의 백돌 흑돌로 서로의 허를 찔러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 바둑과도 흡사하다.

대기업의 영업부서에서 장그래가 하는 행동들은 바둑으로부터 배웠던 것들이 자연스레 표출되고 있는데, 그런 그의 행동은 정규교육과정으로 닦여진 다른 직원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가 한 대사중에 내 마음을 찌른 것은 조치훈이 말했다는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었다.

매일 매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자기를 잃어버릴만큼 심할 때 그는 “그래 봤자 바둑” 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매일 매일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장그래는 “그래도 바둑”이라고 스스로를 닥달하는데, 즉 그는 살아가면서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둑을 두는 일과 같이 인식하면서 오히려 조직문화에 젖은 다른 직원들이 미쳐 보지 못하는 면을 짚어낸다.

그 장그래와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에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인 발리안이 있다. 발리안은 혈통은 십자군 시대의 용맹한 기사 고프리의 아들이었지만, 성년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모르고 대장장이로 자랐고, 고프리가 죽으면서 기사작위를 물려받아 중동의 이블린이라는 성의 영주가 된다. 미치광이 십자군 장군 때문에 촉발된 전쟁에서 아랍의 현명한 군주 살라딘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지키는 일을 맡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기사계급이라는 특권의식이 없이 자란 발리안은 당연히 성안의 모든 주민들을 자기와 같은 생명으로 인식하면서 예루삼렘성을 지키는 일보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그런 생각은 성안의 모든 사람들의 단결력을 이끌어내어 예루살렘 성이 생각보다 더 견고하게 지켜지자 살라딘은 협상을 청하고 발리안은 성안의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면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떠나겠다고 협상안을 제시하여 살라딘으로부터 약속을 받는다.

협상이 끝나고 살라딘이 돌아서 갈 때 발리안은 문득 “예루살렘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살라딘은 가볍게 “nothing… …and everything” 이라고 대답한다.

영화와 드라마 속의 가공의 인물이지만 장그래와 발리안의 공통점은 그가 갑자기 던져진 사회에서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으로, 그 사회에 계속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에 비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그 문제점을 넘어서 본인에게 던져진 숙제의 해답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의료가 가진 문제점은 뭘까? 지금의 의료시스템은 몇몇 스타의사를 제외하고 의사들은 불행하다고 하고, 환자들도 병원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고, 의료비는 여전히 가정을 파괴할 만큼 고비용이라고 한다.

일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국의료시스템은 자본주의에 너무 물들어 있는 것이라는데, 자본주의의 온갖 나쁜 점과 좋은 점들로 오염된(?) 한국사회에서 의료시스템만 홀로 자본주의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가능한 현실일까?

학교에서 교육받는 과정을 막 끝내고 의료시스템의 최전방에서 환자들을 진료해내는 전공의들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지금, 그들의 목소리를 장그래와 발리안의 목소리로 받아들여 더욱 건강한 의료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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