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빈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외과 교수
약 2년 전 걱정스러운 표정의 구부정한 70대 노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부인은 오랫동안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아 대부분의 손가락 마디가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경추 관절이 짜부라지고, 경추뼈가 두개골 입구에서 척수를 압박하고 있어서 이로 인해 사지의 저린감과 근력약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환자는 이미 타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권유 받았다. 이런 경우 두개골을 포함하여 제1-2 경추의 간격을 넓혀주며 척수압박을 풀어 주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수술 후 머리와 목이 고정되어 운동이 심하게 제한된다. 최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 1-2 경추관절에 보형물을 넣어 간격을 넓히고 고정범위를 줄이면 같은 효과를 내면서 목 운동은 유지할 수 있다. 이 환자에게도 이 방법을 쓰기로 하였고, 다행히 수술이 잘 진행되어 증세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이 환자의 목에 사용된 보형물 2개 값이 수술비와 함께 삭감이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더 황당한데, 감염성 질환에 금기로 되어 있는 보형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감염성 질환이라 하면 세균의 침범에 의한 척추염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감염성 질환에 이 물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류마티스성 관절염은 세균에 의한 감염성질환이 아닌 자가면역질환으로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혹시 두 진단명 모두 염증성 질환일 때 붙는 어미인 ‘-itis’ 가 동일하게 붙는데, 그 이유 때문에 감염성 질환으로 판단했다면 이는 삭감과정에서 전문적 의료지식이 결여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삭감에 대하여 재심사 청구를 하기 위하여 사유서를 작성하고 논문을 찾아 첨부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동료 의사들에게 토로하니 비슷한 일들이 너무나 많으니 그냥 참고 있으란다. 어떤 개원의는 삭감에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실사가 나오니 아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단다.

1년이 지나 이제 잊어버릴 만할 때가 되었을 때 쯤, 제출했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삭감된 금액 전부를 지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심평원이 비용효과적 측면에서 진료를 추구하고 있으며,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나 무분별한 수술을 통제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간혹, 보편적 의학지식에 미치지 못하는 전문성으로 불공정한 삭감이 시행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의료진과 심평원 사이에서 소모성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는 것이 또한 한두 해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심사평가원에서는 ‘일단 삭감을 하고, 이의 신청을 받아 보자’는 식으로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삭감도 인간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조치는 미비하다. 재심사에 의해서 환급이 결정되는 경우에는 급여지연에 따른 이자를 계산해서 의료기관에 환급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이는 의료기관에 얼마 되지 않는 금전적 보상을 하라는 의미보다는 삭감과정을 보다 성실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평가 기준을 철저히 지키면서 심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고, 심사과정에서 전문위원이 아니라 일반 직원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는지도 조사해야 할 것이다.

심평원은 기초적인 의료 상식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발달하는 새로운 의료기술에 적절히 대처하여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된 평가기준을 마련하여, 국민이 보다 진보된 치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