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어렸을 때 부모 즐거움이 형이하학적 수준이라면
좋은 짝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니 기쁨 두 배, 행복 두 배!

▲ 이영호
한국여자의사회 부회장
제일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나에게는 7살 터울인 두 딸이 있다. 작은 딸애까지 결혼을 하고 나니 친구들이 ‘일찌감치 큰일 다 끝냈으니 좋겠다’ 고 부러워들 한다.

사실 큰 딸은 28살 적령기에, 작은 딸은 24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하여 우리 부부는 50대 초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장인, 장모가 되었으니 요즈음 사회 분위기로는 이른 나이에 우리 집이 양로원이 된 셈이다.

자식을 키워보니 애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들이 자식들 때문에 즐거워하고 감동 받는 일은 어느 정도 형이하학적인 수준이라고 한다면, 애들이 커가면서 주는 감동이나 즐거움은 상상 이상인 것 같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애들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고, 공부 잘 하고, 대학 잘 들어가면 걱정이 없었는데, 이제는 좋은 짝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을 보니 애들이 어렸을 때 우리 부부에게 주었던 감동과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는 실속 없는 외강내유 성격의 소유자라 주위 사람 특히 가족들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울컥하는 듯싶다.

몇 년 전에 큰 딸이 결혼하고 나서, 추석 연휴에 아직 결혼 안 한 작은 딸과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해가 제주도에 막대한 피해를 몰고 온 태풍이 오는 바람에 여행이 취소가 되어 추석 연휴를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큰 딸애가 시댁에 가지고 갈 음식 장만 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엄마 괜찮아! 신랑이랑 같이 하면 돼, 엄마도 좀 쉬어야지.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쉬어” 정말로 가슴이 뭉클 했다. 진심으로 저에게 쉬라고 한 사람이 저희 큰 딸이 처음인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딸들이 ‘자기들은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애만 키우는데도 힘든 데 엄마는 보통은 아닌 아빠 내조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냐’ 고 생일 카드에 적어 보내면 엄마한테는 딸이 꼭 있어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런 딸이 나에게는 두 명이나 있으니 기쁨 두 배, 감동 두 배, 행복 두 배!

요즈음은 ‘손주 바보’ 가 되게 해 준 이런 딸들에게 더더욱 감사해 한다. 애들 아빠가 외손주들이 우리 부부에게는 힐링(우리 부부가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이라고 한다. 주중에 힘들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주일에 같이 예배 보고, 식사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고 새로운 한 주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아마도 이 세상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100%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일과 가정을 모두 다 잘 해 보려고 나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 하면서 “양보다는 질이야, 집에 있는 엄마들도 다 나보다 잘하지는 않을거야, 일 하는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많아” 라고 자기 위안을 하였었지만, ‘일하는 엄마한테서 우리 애들이 상처 받는 일은 없었을까’ 하는 걱정과 언제나 저 깊은 곳에 미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두 딸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더하는 거겠지.

엄마가 자기들을 믿어 주고 자기들 의견을 존중해 준 것이 지금 생각하니 자기들이 여태까지 잘 자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말에 내가 엉터리 엄마는 아닌가 보다고 다시 한 번 위로하면서, 나보다 좋은 엄마, 나보다 따뜻한 딸, 나보다 나은 아내, 며느리로 살아 가고 있는 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그리고 딸만 주셔서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의 평범한 인간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이중 잣대를 피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자매들끼리 삶의 지혜를 공유하면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책상 위의 휴대 전화에서 우리 딸의 벨 소리가 울린다. 날마다 오는 안부 전화인데도 언제나 설렌다. 손주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까 더더욱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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