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윤리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꼭 해야만 하는 일(obligatory)이고, 둘째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forbidden), 마지막으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permissible)이다. 이중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정해진 것들이 있다. 교권(敎權)과 강단권(講壇權) 그리고 진료권(診療券)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교사나 교수가 설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수업시간에는 교실내로 진입 할 수 없다는 뜻이고, 어떠한 이유로도 환자를 진료하고 있거나 수술하는 동안 의료행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꼭 법으로 정해지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본분이고 상식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이 무너지게 되면 교육과 의료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이 무너져 버리게 된다. G10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에서 문화 후진국에서나 발생할 법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4년 8월 서울 모 이비인후과에 압수수색을 한다는 명목으로 수술실까지 들어와 수면 마취하에 있는 환자의 수술이 방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아찔한 일이다. 안전불감증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 알까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민간보험회사 직원이 공무원인양 행세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볼썽사나운 일까지 벌였다고 한다. 법과 윤리 그리고 상식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일이다.

국회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춘진 의원은 “진료실은 압수 수색을 할 수 없는 곳으로 의료법에 나와 있다” “국민들과 의사들이 불안해서 치료나 진료를 할 수 있겠냐?” 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같은 당의 김용익 의원은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전문성을 갖고 오히려 수술실 진입을 막았어야 했다” 고 했다.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증거 자료로 쓰겠다며 환자의 동의도 없이 수술 중에 있는 환자의 수술상황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것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이다” 라고 지적했다.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의 박인숙 의원도 “평상복 차림과 외부에서 신는 신발로 수술장을 출입한다는 것은 환자를 감염에 노출시키는 일이다” 라고 지적하며, 환자에 대한 안전 대책을 강하게 요구했다. 환자들의 안전과 진료권의 훼손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강한 우려와 지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료권에 대한 법적인 안전조치가 정부와 국회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법을 정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 법을 알리고 잘 준수하고 있는지 일일이 알아보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법의 이런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 윤리이고, 사회상식이다. 누가 해라 마라 해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진료중이나 수술 중에 의사의 진료나 수술이 중단되거나 방해받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발생해서는 안 된다. 어떤 개원의가 수술실 입구에 써 붙인 문구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무리 바쁘셔도 수술 중 경찰관님과 보험회사 직원의 수술실 출입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어도 수술 환자가 위험 할 수도 있으므로 수술이 끝난 후 조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법과 윤리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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