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결혼하고도 일에 쫒긴 나머지 수련병원 과장 맡은 한참 뒤 첫 아이의 엄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함께 모신 덕분, 육아부담 덜고 어른들 찾아뵐 시간도 절약
‘일-가정 양립’ 날개되어 주신 두 어머님께 감사
할머니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 대견하고 미안

충남대병원장
두 아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고 나니, 여의사로서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지나온 삶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가슴 깊이 남아있는 아련함이 있다.

일하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육아에 대한 부담이다. 전공의 2년차에 결혼한 주말부부에게 양가 어른들께서 아기를 많이 기다리셨지만 정작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급급했을 뿐이었다.

수련병원의 과장으로서 첫 번째 전공의가 3년차 후반이 되어 일을 맡아줄만 하게 되어서야 첫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4주간의 짧은 분만휴가를 미안해하면서 지내고 친정어머니께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였다. 아기는 나를 키우신 어머니께 맡겨두면 나만큼은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출산 전의 익숙한 병원생활로 도망치듯 복귀하였다.

아이가 만 3세가 되었을 때, 직장을 옮기게 되어 아이는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주말에만 만나게 되었다.

아이에게 생긴 피부병이 전혀 호전되지 않아 애를 태우던 중, 어디서 많이 본 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시절 봉사활동 갔던 고아원에서 본 아이들의 피부와 너무나 닮아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안해”를 반복하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에겐 어설프더라도 엄마가 필요했었던 게다.

둘째는 형보다 7년 늦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 둘째는 모든 면에서 형과는 달랐다. 성장과 발달이 훨씬 빨랐고 밖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집에 데리고 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부모가 될 준비가 없었던 우리 부부는 둘째를 키우면서야 첫 아이에게 얼마나 철없는 부모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배워야했고 아이들에게 조금씩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기능적인 부모역할 보다는 일차적인 사랑을 듬뿍 나눌 수 있는 아빠와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

그러나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으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 내기도 벅찬데 주말에만 만나는 아빠를 대신하는 역할까지 어떻게 모두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뾰족한 방법이 없던 터에, 홀로 사시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셔다가 같이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두 분께서 허락해주셨고 대가족을 이루어 15년을 같이 지냈다.

아이들은 사랑 넘치는 할머니 두 분이 같이 계시니 부러울 것이 없는 듯하였고, 할머니를 정말 좋아하며 존경하고 주위의 어르신들도 보살펴드리며 성장하였다. 할머니 두 분도 적적하지 않아 좋아하셨다. 늘 시간에 쫓기던 우리에겐 육아의 부담이 줄었을 뿐 아니라 어른들을 찾아뵈러 가지 않아도 같이 계시니 마음이 놓였다.

돌아보니, 준비가 없는 채로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들 덕분에 조금은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두 어머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육아라는 숙제를 마쳤으니,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나의 두 날개가 되어주신 두 분 어머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대를 이은 육아과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귀한 유산이 전해지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배운 사랑으로 젊은 세대가 가정에서 사랑을 확대 재생산 하는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돕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풍성한 할머니의 사랑으로 그 다음 세대를 또 더 많은 이웃을 포근하게 감싸 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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