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봉윤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장
2002년 헌법재판소는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한 약사법 제2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 이유는 구성원 전원이 약사들인 법인에게까지 약국의 개설을 금지하는 것은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할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단체 결성 및 단체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일반인이나 일반법인도 약국을 소유하게 할 경우 대자본을 바탕으로 한 기업형 약국들이 약국시장을 장악할 우려가 있고, 약국이 철저히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체로 변모하여 영리추구를 위한 각종 방법이 총동원 됨으로 인하여 의약품의 과소비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는 약사의 기본권이 제한된 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지 약사를 제외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거나 제한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친절하게도 약사의 기본권이 제한된 약사법을 개정해 법인약국을 도입하여 약사의 기본권을 확보해 주겠다는데, 왜 약사들은 결사 반대를 할까?

헌법 제36조 제3항은‘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국가로 하여금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의료급여를 보장하여야 하는 사회국가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인간의 건강과 생명, 즉 건강권 보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약사법은 약사의 전문성, 약사에 의한 약국 시설의 직접 관리와 전념 의무를 규정하여 의약품의 안전한 유통과 국민 건강의 증진이라는 헌법상의 국가의 의무(헌법 제36조 제3항)를 전문 약사를 통하여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영리 목적 상행위에 적용되는 상법의 원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의약품 매출의 80% 이상은 정부의 통제와 관리 하에 있는 처방조제이고, 20%가 안 되는 일반의약품의 가격은 오픈 프라이스 제도로 되어있다. 판매자가 가격을 표시하는 이 제도로 인해 약국 간 출혈경쟁이 유발되어 대 부분 유명 의약품의 경우 원가 판매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그렇다 보니 약국 간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다고 종종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약사들이 담합을 통한 약가 인하를 방지하기 위해 법인약국을 반대한다는 것이 사실무근이며 근거 없는 낭설이다.

약사들이 법인약국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법인 약국 도입이 의료영리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도 대자본에 의한 기업형 약국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국회에서도 2005년 17대국회 정성호 의원, 2008년 18대 국회 유일호 의원에 의해 법인약국에 대한 법안 발의가 이루어졌지만 법안 심사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국민의 피해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이 도출되었는데 이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이 없어 법안이 자동 폐기되어 버렸다. 지금부터 법인약국 도입의 문제점을 고찰해 보자.

첫째, 법인약국 도입이 보건의료영리화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투자활성화의 일환으로 도입하려는 영리법인약국은 상법의 회사 설립을 갖추도록 하여 법인격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영리법인약국은 글자 그대로 국민의 건강보다는 영리 추구가 최우선인 기업으로 재벌뿐만 아니라 외국의 거대 자본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는 또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법상의 회사 특성상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충돌하게 된다.헌법재판소는 2002년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해, 의료기관 비영리를 대 전제로 예외 없는 당연지정제를 합헌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법인약국을 도입한다면 이는 국가가 의료 행위의 영리성을 인정한 것이 되어, 당연지정제 예외를 요구할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이 그대로 유지될 지는 미지수이다.

둘째, 외국 거대 자본의 침탈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된다. 한·미 FTA는 12.4조에 시장 접근 보장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의 한미 FTA는 약사법 제20조 약국개설자를 자연인 약사로, 제21조 제1항의 1약국 개설자 1약국 개설 규정과 회사 형태 약국 개설 금지를‘비합치 조치’로 규정해 두었다.(부속서 I)

쉬운 말로 요약하면 한·미 FTA는 현행의 약사법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데, 만약 영리법인 약국을 도입하게 되면 이는 한국이 부속서 I에서 확보한 시장접근 의무에 대한 비합치 조치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되고, 역진방지 조항에 의해 다시 이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한국은 법인약국 도입 후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어도 한·미 FTA 역진 방지 조항에 따라 헝가리처럼 되돌릴 수 없다. 국내 보건의료계에 외국의 거대 자본의 침탈을 막을 수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부의 해외유출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국민이다. 국민에게 절대적으로 폐해를 끼칠 법인약국을 도입할 그 어떠한 명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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