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한 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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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녀의 아픔과 고통, 정신적인 문제까지 진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지금도 내 귀에는“선생님, 언제면 다 나을 수 있을까요. 결혼할 수 있어요?”하고 그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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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의 나이로 그녀는 깊은 산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나는 주치의로 21년 동안 그녀의 삶을 지켜보아야 했다. 1980년 3월, 17세의 단발머리 소녀로 모 대학 병원에서 류머치스성 관절염과 막증식성 사구체신염을 진단받고 고열이 소실되지 않아 국립의료원에 1차 입원하게 되었다. 이때 좌측 턱부위 엄지손가락 크기의 림프샘 종이 만져졌다.나는 결핵성 림프절염, 아니면 림프샘 종양을 의심하며 세포조직검사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비특이성 림프절염으로 진단되어 즉시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혈액을 포함하여 모든 검사를 시행하여도 혈뇨와 감마 글로불린의 상승, 류머티스성 관절염의 소견 외에는 별이상이 없었다. 고심 끝에 아스피린과 스테로이드제를 투약했다. 고열과 림프샘 종이 사라지고 전신증상이 호전되어 일단 퇴원시키고 관찰하기로 하였다.

3개월이 지날 무렵 소화불량 및 식욕부진으로 2차 입원하게 되었다. B형 간염 항원이 음성이며 간기능 수치가 상승하여 A형 간염을 의심하였지만, 치료는 잘 되었다.

그 해 10월 늦은 밤에 그녀는 고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그녀의 부모님은 불안한 나머지 급히 우리 집에 차까지 보내 나를 병원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그때 그녀의 얼굴은 호흡곤란과 함께 청색증으로 보였고 간과 비장이 많이 부어 있었다. 비대한 심장과 심낭에는 물이 차 있었고 부정맥도 있었다. 간 수치는 다시 상승하고, 이유를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전신 조직에 병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무조건 다량의 스테로이드제를 혈관으로 투여하였다. 의학적으로 스테로이드제는 부작용이 심해 반드시 투약해야 할 지침을 지키면서 사용해야 하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는 이 약이 먼저 사용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적같이 그녀는 정상 호흡하면서 점차 전신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점점 나에게 의존하며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때부터 자가면역에 의한 교원성 질환(Collagen Disease)을 염두에 두었지만 확실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다.

1980년 12월 4차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심한 구토때문에 흡입성 호흡곤란이 와서 반 혼수상태로 또 다시 응급실에 실려 왔다. 폐 전체에 잡음이 들렸고 부정맥과 폐부종의 증상을 보였으나 의식은 거의 없었다. 기관지 삽입술을 시행하고 여러가지 약물을 투여하여 입원 2일째 가까스로 의식상태가 명료해졌다. 기관지의 삽관도 제거하고 전신상태는 호전되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여 의료진들을 긴장하게 하니 도대체 무슨 질환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에서 할수 있는 검사로는 한계가 있었다.

1981년 3월 나는 남편과 미국 학회에 가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부부 함께 외국 나가기가 까다롭고 동시에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는 시기였다. 남편은 심장학회, 나는 혈액 학회에 가기 위해 초청장을 따로 받고 미국 학회에 가게 되었다. 학회에 가는 김에 그녀의 혈액을 드라이 아이스박스에 넣어 미국 세인트루이스 의과대학 병원에 의뢰하러 가겠다고 하니 그녀의 아버지는 반색하며 우리를 공항까지 배웅하였다. 외국여행은 초행인지라 절차도 모르고 있는데 우리는 접견실로 안내되고 바로 비행기 안 일등 실로 가게 되었다. 미국 오하이오 병원에 인턴으로 가려다 결혼으로 포기했던 나는 미련과 호기심을 가진 채 미국 LA 공항에 도착하였다. 때마침 그녀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다른 환자의 혈액도 같은 통에 넣어 검색 대에서 심사를 받았다.이상한 통을 발견한 검사원은“이게 무엇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다. 나는 환자의 병을 진단하기 위한 혈액이라고 내용물을 보여 주며 자세히 설명하고 겨우 통과하게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대학병원에서 시행한 그녀의 혈액 검사 결과는 자가 면역 항체(Anti-RNP) 수치가 1:80으로 나와 결국 혼합성 결합조직 질환 (mixedconnective tissue disease)으로 판명되었다. 이 질환은 임상적으로 피부, 관절, 폐, 신경 등 전신에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만성 자가 면역질환이다. 진단은 임상증상과 함께 혈액 검사에서 자가면역 항체(Anti-RNP)가 양성으로 나오면 진단이 된다. 발생원인은 자기항체에 의하거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면역 체계의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증상은 대개 관절통, 관절염, 수지의 부기, 손가락 발가락이 찬 공기나 찬물에 노출될 때 하얗거나 파랗게 변화되는 레이노현상과 손에 부종이 흔히 일어나고 근염, 고열, 림프절염, 각 장기를 전반적으로 다 침범하는 질환이다. 가슴막염과 심낭염도 올 수 있고 경증 및 중증의 간 비장 증대도 보이며 폐 기능은 감소되고 X-선상 폐간 질의 섬유화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치료는 환자 개인마다 다르며 증상과 침범된 장기에 따라 치료를 해야 하는데 스테로이드제에 효과가 좋고 예후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 함께 검사한 34세 주부도 혈액 검사상자가 면역 항체(Anti-RNP) 수치가 1:40,560으로 나와 같은 질환으로 판명되었지만 아깝게도 그 해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나는 한국 최초로 이 질환에 대해 내과 학회 잡지에 보고하였다.

그 후 나는 국립의료원을 떠나 개원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기에 상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녀가 입원하면 다급하게 나는 국립의료원으로 회진을 간다. 가끔은 교통이 막혀 반나절이 소요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숨이 넘어가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점점 얼굴은 창백해지고 손가락의 마디 마디는 휘어져 변형이 심해가며 다리는 가늘어 새 다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감마 글로불린이 상승하면 호흡 곤란과 심박동이 빨라지면서 전신 증상이 더욱 악화하기 때문에 혈액의 알부민과 글로불린의 균형을 맞추어 주기 위해 혈장 교환법(Plasmapheresis)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이 기계를 신청해놓고 나는 개원을 하였는데 1년이 지난 후 기계가 들어 왔다는 희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속적인 혈장 교환 투석을 받았고, 소량의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면서 치료가 잘 되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발작적인 증상이 나타날 때는 대증요법으로 치료하였다.

나는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녀의 아픔과 고통, 정신적인 문제까지 진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아름다운 청춘을 병마와 싸우며,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접어야 했던 그녀, 남자 친구가 있어도 미래가 두려워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해야 했던 그녀, 21년을 내 옆에서 나와 상담하며 나의 지시를 따르고 처방에 따라 하루하루를 지냈던 그녀이다. 지금도 내 귀에는“선생님 언제면 다 나을 수 있을까요? 결혼할 수 있어요?”하고 그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다. 죽음이 앞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항상 희망을 안고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지냈기에 휴식을 취하러 산사에 갔다가 조용히 이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녀는 분명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의 그늘에 대해 생각도, 준비도 하지 않았으리라. 계획된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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