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커뮤니케이션실장

118년 역사의 한국 제약산업에서 매우 의미있는 두 사건(변화)이 2014년 7월 동시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국 제약산업이 새로운 성장단계로 올라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 두 사안은 무엇일까?

하나는 독자들이 언론의 떠들썩한 관심과 익숙한 용어 덕분에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무슨 말이고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고, 언론의 시선 또한 흥미를 잃은 듯하다. 두 사안 모두 필자가 보기엔 한국 제약산업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결정적 요인인데도 말이다. 이런 분위기야말로 어쩌면 한국 제약산업에 대한 인식, 언론과 국민의 마음속에 ‘한국제약산업’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두 가지 사안 중 전자는 이른바 ‘리베이트 투아웃제’이다. 이 제도는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된 의약품의 제공 금액과 횟수에 따라 보험급여 목록에서 정지 또는 삭제되는 제도이다. ‘리베이트 쌍벌제’와 ‘리베이트 약가인하 연동제’ 등기존 조치들보다 제약업계에 미치는 파괴력이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다강력해진 규제가 제약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거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윤리경영의 큰 틀에서 업계는 대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정 실천의 의지 또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리베이트 투아웃제 파괴력 강력

다른 하나는 한국 제약산업의 글로벌 진출에 날개를 달아줄 PIC/S(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 가입이다. PIC/S는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에 관한 기준(GMP)과 각국 생산시설에 대한 실사에 관한 유일한 국제 협의체로 세계의 의약품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41개국 44개 기관에만 문호를 열어주었던, 매우 까다로운 기구이다. 우리나라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14년 7월 1일자로 이러한 PIC/S의 42번째 정식 회원이 되었는데도, 일반 국민들은 물론,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조차 그 의미와 이후에 불러올 나비효과를 잘 모르는듯하다. 용어도 어렵고, 그 내용 또한 아주 복잡하게 여겨지는데 따른 것으로 본여진다. 어떤 이는 OECD(경제협력기구) 가입에 비견될 만큼 우리나라 의약품의 국제 신인도 상승을 입증하는 아주 의미있는 경사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렇게 설명해 본다. 과거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선 도저히 불가능하고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일들, 예를 들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이나 이상화의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이 어떻게 가능했나? 동계스포츠 변방의 설움을 딛고 포기를 모르는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세계적 클래스에 올랐음을 공인받은 파이널 무대의 진출자격을 부여받고서야 메달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PIC/S 가입 승인은 이제 ‘코리아’의 브랜드를 단 의약품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생산 및품질관리 역량,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췄음을 말해주는 파이널 무대 자격증이자 국제 공인 인증서라고 보면 된다.

의약품 국제인증서 ‘픽스’ 가입

전쟁터에서 수천 수만 발의 소총보다 한두 발의 폭탄 투하가 몇 백배 더 위력적이며, 그래서 공중전의 결과가 승패의 절대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개별 제약사들이 의약품을 해외에 팔기위해 다국적 제약사들과 바이어들에게 입이 아프게 자사 의약품 품질과 관리수준의 우수성을 말해야했다면, 이제는 ‘PIC/S 가입국’자격증만 내밀면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우리나라 의약품에 대한 대우가 2014년 7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베트남의 경우 의약품 공급 입찰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 순위인 ‘기타 3그룹’에 속했는데, 바로 ‘PIC/S 가입국’에 주어지는 1그룹으로 위상이 확 달라졌다.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 PIC/S 미가입국의 의약품에게 불이익을 주던 나라들에서 이제 진입 장벽 대신 ‘1등급 코리아’의 프리미엄을 얻었다.

PIC/S 가입은 또 우리 의약품을 수출할 때 국내 생산시설에 대한 외국의 실사 등 필수 절차를 면제받을 수 있는데다, 부정·불량 의약품의 긴급 정보시스템 공유를 통해 국내에 수입된 해외 의약품의 문제 발생 시 보다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등 다양한 혜택을 보장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무도 따른다. 과거에 비해 훨씬 깐깐한 세계 수준의 잣대가 국내 생산환경 등에 적용될 것이고, 국산 의약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외국의 기대에도 부응해 야할 의무가 있다. PIC/S 가입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식약처가 혼신의 힘으로 일궈낸 PIC/S 가입은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 국가 경쟁력 제고와 국부 창출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1000조원대 세계 의약품시장에 대한 도전과 신약개발은 산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우리 제약산업이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산업이자 핵심 성장동력이 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 진단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민·관이 함께 구호가 아니라 실리와 결실을 도출하는 협력 모델의 이번 성공사례가 정부에, 보건복지부 등에 건강한 자극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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