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7일 의협과 보건복지부간의 의·정협의 내용이 발표되자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의사의 밥그릇 챙겨주는 수가 인상’이라고 비난하는 단체들이 많다. 또한 의료계 내에서는‘겨우 이것을 얻어내자고 그 난리를 치며 국민의 욕을 바가지로 먹어가면서 휴진을 했느냐’는 비판도 있다.

최근 정부는 특진도 없애고, 상급 병실료도 없애고, 비급여도 없애고 여러 가지 새로운 압박을 의료계에 가하고 있는데, 이 멀쩡한 양반들이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가 원가의 75% 수준이란 말을 자기들 입으로 하면서도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개원가의 부족한 의료수가를 일부 보전해 주던 제약회사 리베이트를 포함한 모든 제도를 다 규제하면 서‘, 비정상의정상화’를내건정부에서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를 타개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돈을 한푼도 못 내니까 당신들이 관을 팔든, 수의를 팔든, 커피를 팔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아라’는 것이 의료민영화라는 말에 깔린 정부의 뜻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전공의들의 과도한 근무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꿔야 현재의 의료 수준이 유지될까? PA제도를 통해서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보는 시각대로 표현하자면, 편하게 놀고 자빠져 있는 교수더러 나와서 채우라는 것인가? 그 놀고 있는 교수는 당직을 서고도 다음날 다시 외래 진료를 하라는 말인가? 이를 현재의 수준으로 유지하자면 더 많은 수의 전공의가 필요할 것인데, 이 소리하면 의괴대학 더 세우자는 얼빠진 소리들이나 해댈것이니 주장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원을 늘리는 것은 원가를 높이는 일이고, 원가를 높이는 것은 결국 보험수가를 높여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의료계가 들끓는 것은 수가를 인상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수가를 현실화해 놓고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구멍가게에서 애들한테 원가 100원 짜리 물건을 파는데 정부가 나서서 ‘불쌍한 코흘리개들에게 물건을 팔면서 왜 그리 비싸게 파느냐’고 마진은 커녕 25% 할인해서 팔 것을 강요하고, 그것도 부족해서‘장사 안 된다고 문 닫는 날에는 형사 구속까지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나 지금의 의료계의 현실이나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의료제도의 모든 모순을 창조하고 강요했던 정부가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는 않고,‘ 아직도 너희들은 먹고 살만한 편이니까 다수의 국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이 지금의 현상 아닌가?

수가를 인상하는 것은 적정 마진을 보장하고 재투자 할 여력을 갖추게 하여, 공공의료가 무너져 재기불능인 국내의 의료를 민간수준에서라도 보장할 수 있게 하자는 의미인데, 정부가 조금이라도 그동안 의료계의 희생을 인정한다면, 최소 원가라도 맞추어 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해야 하는 것이 나라의 도리가 아닐까? 왜 국민과 관변 단체들을 들쑤셔 수가를 인상하면 여태까지 받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여태까지 이 나라에서 행해지던 비정상적인 의료제도는 막을 내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와있다. 여당도 야당도 그리고 정부도 ‘앞에 닥친 선거만 대충 넘기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이번사태를 마무리 지으려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의료계가 원하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그것이 이 정부의 정책기조가 아닌가?

<정지태 고려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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