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재두 공보의
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사
나는 요새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곤 한다. 내가 보고 만나는 직종 중에서 가장 친절한 분들이 톨게이트 부스 안에서 일하시는 분 같다. 통행권을 내밀고,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는 3초의 짧은 시간 안에서 진정한 친절과 미소를 느낄수 있다. 진정 인간다운 삶의 한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운전자가 인사하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 테지만, 상대방의 무표정과 상관없이 밝은 미소로 3초의 만남을 따뜻하게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게 짧은 3초의 시간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지나 목적지를 향해 운전을 하고 있으면 자기성찰의 시간이 따라온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와 단순노동처럼 느끼는 시간 속에서 매순간 웃음을 잃지 않고, 만나는 모든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유쾌한 목소리로 화답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볼 때, 의사가 하는 일이 복잡하게 보이고, 어려운 일 처럼 보일 지라도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의사들은 하루하루를 무한반복의 연속처럼 느끼곤 한다. 적어도 나만큼은 확실히 매너리즘에 빠져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 없이 환자를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함을 털어놓는다.

누군가 나에게 톨게이트 부스 직원들처럼 친절하게 웃는 표정과 말, 그리고 태도를 훈련시켜준다면, 기꺼이 그에 상응한 돈을 지불할 생각이 있다. 그만큼 요새 나는 행복해지는데 있어서 친절한 표정과 밝은 목소리 그리고 맑은 미소, 예의바른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말처럼 쉽게 길러지는 덕목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정말로 모든 환자에게 살갑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고 싶다.

무표정, 불친절, 설명하기 귀찮아하는 내 모습은 정말 나를 절망케 만들곤 한다.

물론 밝은 표정, 친절한 말투, 유쾌한 목소리와 미소가 손님과 환자를 대할 때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늘상 있어오던 인간관계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 그것들이다.

부모자식관계, 형제 관계, 친구사이, 남편과 아내사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표정과 목소리, 태도만 살짝 따뜻하고 유쾌하게 바꿔도 우리의 인생은 지금 보다 훨씬 따뜻하고 유쾌해질 것이 확실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위에서 말한 덕목의 중요성은 초등학교 때부터 무수히 들어왔고,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인간관계도 무수히 비슷하게 겪어왔지만, 사실 오늘, 지금 만나고 있는 인간관계는 지금까지와는 없었던 새롭게 짜여진 인간관계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한순간의 대화도 완전히 똑같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으며, 똑같은 목소리와 말투, 표정, 태도를 되풀이 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잘 쌓아온 훌륭한 인간관계도 한순간의 말실수, 태도, 표정, 한순간의 기분으로 물거품이 된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들어왔던가.

매일 보는 환자, 똑같은 증상, 똑같은 업무, 같은 사람이라도 볼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접하고 받아들여야 얼굴은 웃을 수 있고, 태도에는 겸손해지고, 목소리는 유쾌해지고, 기분은 새로움으로 들뜰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하면서 많은 목표를 또다시 만들어봤다. 금주, 운동, 저축, 효도등 많은 목표를 만들었지만, 올 한해에는 친절과 미소를 가장 으뜸이 되는 목표로 삼아 힘껏 정진할 것을 이글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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