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100년 전, 아니 불과 몇 십 년 전 인류의 모습에 비교해 볼 때 현대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하였고, 지금도 그 과정에 놓여 있다. 더욱이 첨단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현대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폭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의 경이로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그 속도는 일촌광음(一寸光陰)을 다툴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부터 변하지 않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독립적으로 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생활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때,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의 원초적 인연을 강조하면서 크고 작은 모임을 꾸려 왔고, 이를 넘어서서 국가를 수립하는 등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떤 사회나 어떤 국가가 붕괴하거나 패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지도층의 헌신과 희생이다. 이 점은 영국의 교훈에서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영국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튼스쿨’(Eaton School)이라는 중등 교육기관이 있다. 이튼스쿨은 1440년 영국 국왕 헨리6세에 의해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총 18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하였는데, 현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튼스쿨은 영국의 명문 중 명문 학교임에 틀림없다.

이튼스쿨 교정의 뒷마당엔 수많은 묘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묘비석의 주인들은 모두 이튼스쿨의 재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제1차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조국인 영국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그들은 당시 10대의 어린 나이이었기 때문에, 꼭 참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차 약속된 명예와 출세를 초개(草芥)처럼 버리고 조국을 위해, 국민의 안위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힘, 그리고 지금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영국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은 비약일까?

최근 우리사회에서 명문 학교의 대세는 과학고, 외국어고와 자사고 등으로 상징되는 특목고들이다.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이른바 SKY로 지칭되는 명문대학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우리사회에서 ‘특목고 열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 설상가상으로 특목고 열풍은 특목고 입학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국제중학교나 영재중학교 입시에까지 번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태산(泰山)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화마(火魔)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서 명문학교의 졸업생들은 한국사회의 상위 1%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사회의 상위 1%가 된다는 것은 사회지도층의 중추가 된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운명은 지도층의 자질과 능력이 어떠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영국에서 이튼스쿨은 상위 1%에 해당하는 리더들을 길러 왔다. 이튼스쿨의 졸업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량지재(棟梁之材)로서 영국 사회를 지탱해 오고 있다. 그들이 영국사회의 기둥이 될 수 있었던 저력의 근원은 재학시절 교정의 뒷마당에 서 있는 묘비석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IMF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환란을 경험하였다. 그 뒤를 이어 최근에 우리나라는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에다가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아직까지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빈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 사회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그리고 도전보다는 포기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현상은 우리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지금 이튼스쿨의 묘비석이 우리 사회에게 소리없이 외치고 있다. 한국사회의 리더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여! “99% 위에 있는 1%가 아닌 99%를 위한 1%”가 되라고….

고 용 규
의약품물류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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